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총 2,11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최영걸 / 崔英傑 [역사/근대사]
미상-1921. 독립운동가. 함경남도 온성 출신.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에 가입, 활동하였다. 1920년 9월 노령(露領)으로 옮겨 그곳 시지미에 있는 강용궁(姜龍宮)의 집에서 김학섭(金學燮)·강병관(姜秉官)·최시능(崔時能)·문창학
최영년 / 崔永年 [문학/한문학]
일제강점기 국민신보 사장, 조선문의 주필 등을 역임한 언론인.친일반민족행위자. 신소설 『추월색(秋月色)』의 작가인 최찬식(崔瓚植)이 아들이다. 1897년 고향인 경기도 광주에 사립 시흥학교(時興學校)를 설립해서 신교육보급에 앞장섰다. 1904년 일진회(一進會)에 가입하
최일명 / 崔日明 [역사/근대사]
1888-1976. 독립운동가. 평양 출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양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1920년에는 평양의 서성리교회에서 청년단을 조직하고 상해(上海)로부터 몰래 들어온 선우 혁(鮮于爀)과 함께 평안남도내에서 군자금을 거두어 상해로 전달하였다
최일엽 / 崔日燁 [역사/근대사]
미상-1921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일엽(崔日曄)이다. 출신지는 평안북도 선천이다. 1919년 만주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의 집동총관(輯東總管)을 지냈다. 1919년 중국인으로부터 개척지
최자남 / 崔子南 [역사/근대사]
1876-1933. 독립운동가. 황해도 재령 출신. 노령(露領) 시베리아로 건너가 그곳에서 장사를 하였다. 1915년경부터 독립운동가들과 접촉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사이토(齋藤實)총독 저격사건을 일으킨 강우규(姜宇奎)와는 약 4개월간 같이 집에서 기거하기도 하였다.
최재석 / 崔在錫 [역사/근대사]
1897-195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재식(崔在植)이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安城)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이유석(李裕奭)·최은식(崔殷植)·홍
최재형 / 崔在亨 [역사/근대사]
1858-1920년. 독립운동가. 일명 재형(在衡)·도헌(都憲). 러시아 이름은 뻬돌쏘오, 최뻬찌카. 함경북도 경원 출신.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노우키에프스크(煙秋)에 이주하여 러시아에 귀화하였다. 러시아 군대의 어용상인(御用商人)으로 치부하여 관리가 되고
최정기 / 崔貞基 [역사/근대사]
1913-200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광주(光州)이다. 광주농업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6년 재학 중 동학생 김남철(金南哲)·김순복(金順福)·정욱(鄭昱)·조길룡(曺吉龍) 등 20여 명과 함께 결의를 하여 항일비밀결사단체인 독서회를 조직하고,
최제학 / 崔濟學 [역사/근대사]
1882-1959. 일제강점기 유학자·독립운동가. 자는 중열(仲悅)이고, 호는 습재(習齋)이다. 본관은 탐진(耽津)이고, 전라북도 진안(鎭安) 성수(聖壽) 목동 출신이다. 독립운동 당시에는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에서 지냈다. 고려 인종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최종기 / 崔宗箕 [종교·철학/천도교]
1883-1953년. 일제강점기 천도교인·독립운동가. 호는 표암(杓菴)이다.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운암면(雲岩面) 지천리(芝川里) 출신이다. 조부는 지포(芝圃) 최봉성(崔鳳成)이며, 부친은 복암(復庵) 최승우(崔承雨)이다. 평생을 종교운동과 구국운동에 종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