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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하시구치 나오에몬 / 橋口直右衛門 [정치·법제/외교]

    ?-?. 한성 주재 일본부영사. 인천 영사. 1884년 프랑스공사관으로 부임하였다. 1887년 한성 주재 일본부영사로 도임하였다. 1893년 6-11월 주청 일본공사관 서기관으로 근무하였다. 1895년 10월 8일 인천 주재 일본영사로 조선에 도착하였다. 1895년 1

  • 하야시 곤스케 / 林權助 [정치·법제/외교]

    1860-1939. 일본 외교관. 주한 일본공사. 1887년 외무성에 들어가 교제관 시보에 임명. 1887년 10월부터 지부 부영사, 1888년 11월부터 인천 영사, 1892년 3월부터 상해 주재 영사를 거쳐 1896년 9월 영국공사관 1등서기관, 1898년 1월 청

  • 하야시 다다스 / 林董 [정치·법제/외교]

    1850-1913. 일본 외교관. 외무대신. 1873년 귀국해 외무성 2등서기관으로서 공부성 공학료의 공학조를 겸무하였고, 공부류소승, 공부성권대서기관, 공부성대서기관을 역임하였다. 1886년 역체국장, 1887년 내신국장을 역임하였다. 1891년 6월 외무차관에 취임

  • 하연 / 河演 [종교·철학/유학]

    1376(우왕 2)∼1453(단종 1). 조선 전기의 문신. 즙 증손, 할아버지는 윤원, 아버지는 자종, 어머니는 정우의 딸이다. 정몽주의 문인이다. 1396년(태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조참판, 대사헌, 경상도관찰사, 좌찬성,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

  • 하용기 / 河龍基 [역사/근대사]

    1891-196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1919년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오수리(獒樹里) 장날을 이용하여 이기송(李基松), 오병용(吳秉鎔)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이날 오후 2시 오수리 장터에서 천도교(天道敎)와 기독교도가 중심이

  • 하위지 / 河緯地 [종교·철학/유학]

    1412(태종 12)∼1456(세조 2). 조선 전기의 문신. 윤 증손, 할아버지는 지백, 아버지는 담, 어머니는 유면의 딸이다. 1438년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집현전부수찬에 임명되었다. 집현전부제학, 예조참판을 역임하였다. 노량진의 민절서원, 영월의 창절사,

  • 하의철 / 河誼喆 [교육/교육]

    1907-미상. 일제강점기 교사·독립운동가.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미암면(美岩面)에서 출생하였다. 광주사범학교 재학시절에 학생비밀결사(學生秘密結社)인 성진회에 가입하였고, 민족차별 교육을 일삼았던 일본인 교사를 타학교로 전근시키는 등의 활약을 하였다. 이후 성진회

  • 하진 / 河溍 [종교·철학/유학]

    1597(선조 30)∼1658(효종 9). 조선 중기의 문신. 결 7세손, 기곤의 증손, 할아버지는 한, 아버지는 공효, 어머니는 윤기의 딸이다. 163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병조낭관, 헌납, 지평을 역임하였다. 저서로『태계문집』 4책이 있다.

  • 하트 / Robert Hart [정치·법제/외교]

    1835-1911. 영국인으로 청국 해관 총세무사. 1859년 양광총독 노숭광의 추천으로 월해관 부세무사로 임명되었다. 1861년 청국 해관 초대 총세무사 레이의 위탁으로 총세무사를 대리하였다. 1863년 레이가 오스본함대 사건으로 사직하자 정식으로 해관 총세무사로 임

  • 하해관 / 河海寬 [종교·철학/유학]

    1634(인조12)∼1686(숙종 12). 조선 후기의 학자. 한 증손, 할아버지는 공효, 아버지는 진이다. 13세에 허목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성년이 되어서는 하홍도 문하에 출입하면서 조식의 학문을 사숙하였다. 효행도 뛰어났으며, 인조반정 이후 덕천서원을 중심으로

  • 한경원 / 韓敬源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7∼?). 1843년(헌종 9)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공조판서·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1887년에는 갑신정변의 주모자들과 내통한 지석영·지운영 등을 국문하도록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 한계원 / 韓啓源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4∼1882). 증조는 광직, 할아버지는 치구, 아버지는 진호이다. 외할아버지는 정의준이다. 1835년(헌종 1)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고, 후에 이조판서·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했다. 1840년에는 진위겸진향사행의 서장관으로 청나라를 다녀왔다.

  • 한계진 / 韓啓震 [종교·철학/유학]

    1689년(숙종 15)~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한필적, 조부는 한여익, 부친은 한종기이다. 생부는 한유기, 모친은 박숭부의 딸이다. 형은 한태진‧한원진이다. 수암 권상하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19년(숙종 45) 증광시 문과에서 을과 7위로 급제하였다. 예

  • 한규상 / 韓圭相 [역사/근대사]

    1896-197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한판도(韓判道)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진주(晉州)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강달영(姜達永)·강상호(姜相鎬)·김재화(金在華)·박용근(朴龍根)·박진환(朴進煥)·이강우(李康雨) 등과 함께 독

  • 한규설 / 韓圭卨 [역사/근대사]

    1848-1930. 항일기의 무신·애국지사. 자는 순우(舜佑). 호는 강석(江石). 1885년 우포도대장이 되어 갑신정변에 연루되었던 유길준을 연금 형식으로 보호하는 가운데 그의 《서유견문》 집필을 도와 완성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1896년 법부대신 겸 고등재판소

  • 한극창 / 韓克昌 [종교·철학/유학]

    1600(선조 33)∼1650(효종 1). 조선 중기의 문신. 형 증손, 할아버지는 간, 아버지는 서이다. 위에게 입양되었다. 163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찰방이 되었으나 권신 김자점을 탄핵하다가 함창에 유배되었다. 곧 풀려났으나 벼슬에 뜻을 버리고 후진양성에

  • 한기수 / 韓淇洙 [역사/근대사]

    1879-1926.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한자명을 한기수(韓琪洙)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청웅면(靑雄面) 출신이다. 1919년 3월 16일부터 19일까지 임실군 청웅면 구고리(九皐里)의 주민 2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고 마을을 돌면서

  • 한기악 / 韓基岳 [역사/근대사]

    1898년∼1941. 독립운동가. 자는 명오(明五), 호는 월봉(月峰). 강원도 원성 출신.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한 뒤 이승복(李昇馥)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국내에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동녕(李東寧)·이시영(李始榮)·조소앙(趙素昻) 등과

  • 한도원 / 韓道源 [역사/근대사]

    1906-1984. 독립운동가. 일명 이국화(李國華)·왕소산(王少山).평안남도 대동 출신. 1925년 평양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를 중퇴하고 상해(上海)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상해전차회사의 차장으로 근무하면서 박창세(朴昌世)·강창제(姜昌濟) 등과 함께 항일무장단체인 병

  • 한돈석 / 韓敦錫 [역사/근대사]

    1896-1993.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삼계면(三溪面) 어은리(漁隱里)이다. 1919년 3월 지방 유지 이기송(李起松)·오병용(吳秉鎔)·이만의(李萬儀) 등은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천도교 및 기독교와 은밀히 연락하여 거사를 준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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