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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정치·법제
  • 영정신연도남산연유치주문 / 影幀神輦到南山緣由馳奏文 [정치·법제]

    1900년(광무 4) 3월 13일에 안변에서 남산의 숙소에까지 영정을 무사히 모셔왔음을 의정부 의정과 장례원 경이 고종에게 아뢴 주문. 영정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미상, 옮긴 목적은 그것을 모사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의정부 의정이 영정모사도감 도제조의 직무를

  • 영정신연도회양군연유치주문 / 影幀神輦到淮陽郡緣由馳奏文 [정치·법제]

    1900년(광무 4) 3월 15일 고산참에서 진발한 영정이 회양군의 숙소에 도착하였음을 의정부의정과 장례원경이 고종에게 아뢴 주문. 영정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미상이며, 옮긴 목적은 그것을 모사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의정부 의정이 영정모사도감도제조의 직무를

  • 영정신연자덕원부전진연유치주문 / 影幀神輦自德源府前進緣由馳奏文 [정치·법제]

    1900년(광무 4) 3월 13일 덕원부의 숙소에서 영정을 받을어 모시고 전진하였음을 의정부 의정과 장례원경이 고종에게 아뢴 주문. 영정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미상, 옮긴 목적은 그것을 모사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의정부의정이 영정모사도감도제조의 직무를 맡고

  • 영조가상존호망단 / 英祖加上尊號望單 [정치·법제]

    재위중인 영조에게 존호를 가상하기 위해 1752년(영조 28) 2월 29일 빈청에서 영조의 윤허를 바라며 의정해 올린 가상존호 망단. 의정한 존호는 '장의홍윤광인돈희(章義弘倫光仁敦禧)'의 여덟 글자이며, 이 여덟 글자를 단망의 형태로 써 올려서 영조의 재가를 받았다.

  • 영조사 / 營造司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공조에 소속된 관서. 궁실과 성지, 관공서의 청사와 가옥·토목공사·피혁·모포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다. 공조의 속사로 궁실·성지·공해 등의 토목공사나 공역·피혁·전계 등에 관한 일을 맡는다.

  • 영조사묘전배록 / 英祖私廟展拜錄 [정치·법제]

    영조가 1726년(영조 2)부터 1733년(영조 9)까지 자신의 생모인 숙빈최씨의 소령묘에 참배한 일시, 수행자 등을 직접 기록한 어필 문서. 이 문서는 1733년 3월 17일 정오에 작성되었으며, 글 중의 '대묘'는 숙빈최씨의 사당을 '소묘'는 정빈이씨의 사당을 가리

  • 영중추부사 / 領中樞府事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중추부에 두었던 정1품 관직. 정원은 1인이다. 1466년(세조 12) 종래의 중추원을 중추부로 개편하면서 처음 두었고,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에 의한 관제개혁으로 폐지되었다. 조선시대의 중추부는 형식상 서반의 최고관부로 편제되었을 뿐 일정한 소관사

  • 영진군 / 營鎭軍 [정치·법제/국방]

    조선시대 지방의 요새지인 영·진을 지키던 군대. 조선 초기 ≪경국대전≫에 의하면 당시 외방의 군사체제로 육수군과 기선군이 있었다. 이 육수군에 들어가는 군대로는 번상숙위하는 시위패·영진군 등이 있다. 그러나 지방 수호의 중추를 이루는 것은 영진군이었다. 영진군은 13

  • 영춘추관사 / 領春秋館事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조선시대 춘추관에 두었던 정1품 관직. 정원은 1원이다. 조선시대에는 예문춘추관으로 있었는데 영관사 1원을 두어 시중 이상이 겸하게 하였다. 1401년(태종 1) 7월에 예문춘추관이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리될 때에 실록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예문관과 춘추관

  • 영친왕영지 / 英親王令旨 [정치·법제]

    1901년(광무 5) 2월 영친왕이 경부철도회사의 주식 500주를 소유할 일로 감독 민영철(閔泳喆)로 하여금 대리로 대변하게 하는 문서. 당시 고종황제는 2,000주, 황태자인 순종은 1,000주, 영친왕은 500주를 각각 매수하였다. 1898년 9월 8일 한일양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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