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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태종 / 太宗 [역사/조선시대사]

    1367(공민왕 16)∼1422(세종 4). 조선 제3대 왕. 태조의 다섯째 아들,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이다. 비는 원경왕후이다. 태종은 이성계를 보필해 조선왕조 개창에 공헌하였다. 개국 초에는 한때 불우하기도 했지만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고 국권을 장악하였다. 정종의

  • 태프트 / William H. Taft [정치·법제/외교]

    1857-1930. 미국 육군장관. 국무장관. 미국 제27대 대통령. 1900년 월림엄 맥킨리 대통령의 설득을 받아들여 판사를 사직하고 제2필리핀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필리핀 총독 이후 루즈벨트 대통령 밑에서 육군장관 직책을 맡았다. 1905년 7월 29일 태프트와

  • 파크스 / Harry Smith Parkes [정치·법제/외교]

    1828-1885. 19세기 영국 외교관. 초대 조선 주재 영국공사. 1842년 선교사 모리슨의 사무실에 취직하였다. 1842년 8월 29일 남경조약의 체결 현장을 목격하였다. 1855년 홍콩총독 보우링을 수행해서 시암에서 통상조약을 체결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88

  • 패독 / Gordon Paddok [정치·법제/외교]

    1865-1932. 주한 미국공사관 서기관. 임시대리공사. 1897년 주한 미국 임시대리공사를 맡았다. 1901년 미국공사관 서기관 겸 부총영사로 임명되었다. 1901년 8월 3일 한국에 들어왔다. 1901년 10월 알렌이 미국에 간 동안 임시대리공사직을 수행하였다.

  • 편강렬 / 片康烈 [역사/근대사]

    1892∼1928.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애사(愛史). 이강년(李康埏)의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1907년 선봉장 겸 소모장이 되어 구국항일운동에 가담하였다. 1908년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였고, 1911년 ‘105인사건’과 1919년 ‘구월산주비단사건’ 등으로

  • 편덕렬 / 片德烈 [역사/근대사]

    1897-1976. 독립운동가. 황해도 연백 출신. 1919년 6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가입, 국경주재 연통(聯通) 책임자로 선임되어 국내와의 연락업무를 담당하였다. 같은해 9월에는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1월 임시정부 국내실정조사원이 되어 고향인 황

  • 편무경 / 片茂景 [역사/근대사]

    1893-1961.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운기(雲起)이고 호는 덕포(德圃)이다. 본관은 절강(浙江)으로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나산면(羅山面) 수상리(水上里)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은 편수채(片受彩)이다. 아버지는 편진성(片振聲)이다. 1909년(융희 3)

  • 포크 / George C. Foulk [정치·법제/외교]

    1856-1893. 조선 주재 미국 임시대리공사. 해군장교. 1883년 조선보빙사가 귀국할 때 미국 공사관 해군무관으로 임명되어 조선으로 파견되었다. 초대 주미공사 푸트의 부관 역할을 하였다. 1884년 7월 미국 임시대리공사로 임명되었다. 1885년 1월 푸트 공사가

  • 표연말 / 表沿沫 [종교·철학/유학]

    1449(세종 31)∼1498(연산군 4). 조선 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을충, 아버지는 계, 어머니는 안홍기의 딸이다. 김종직의 문인이다. 김굉필·정여창 등과 함께 문장에 뛰어났다. 조위·김일손 등과 깊은 교유관계를 가졌다. 1472년(성종 3) 식년문과에 병과로

  • 표영준 / 表永俊 [역사/근대사]

    1896년∼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최승환(崔昇煥). 평안남도 강동 출신.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로 망명하여 활동하다가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귀국하였다. 1920년 임시정부 특파원 김석황(金錫璜)과 평양 기홀병원(紀笏病院: 미국인이 경영하는 병원

  • 푸트 / Lucius H. Foote [정치·법제/외교]

    1826-1913. 초대 조선 주재 미국공사. 1883년 5월 - 1885년 1월 재임. 1883년 2월 27일 초대 조선 주재 미국공사로 푸트를 임명하였다. 5월 13일 제물포에 도착하였고, 5월 19일 서울에서 외부대신 민영목과 조약 비준서를 교환하였다. 1883년

  • 하겸진 / 河謙鎭 [종교·철학/유학]

    1870년(고종 7)∼1946년. 근세의 유학자. 아버지는 재익, 어머니는 김해허씨이다. 17세에 당대의 명유 허유를 만났다. 27세 때 스스로 곽종석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고, 29세 때에는 이승희·장석영·송준필 등과 교유, 선현들의 유허지를 순례하고 많은 선비들과

  • 하규일 / 河圭一 [예술·체육/국악]

    1867-1937년. 근세 가곡의 거장. 자는 성소(聖韶), 호는 금하(琴下). 본관은 진주(晋州). 서울 출신으로 가곡의 명창 하순일(河順一)과는 사촌간이다. 작은아버지 중곤(仲鯤)에게 가곡을 배운 다음, 중곤의 스승인 최수보(崔守甫)에게 사사하여 대성하였다. 19

  • 하기와라 슈이치 / 萩原守一 [정치·법제/외교]

    1868-1911. 주한 일본공사관 서기관. 일본 외무성 통상국장. 1895년 일본국 인천 영사대리로 조선에 왔다. 1896년 10월 17일까지 재임하였다. 1901년 6월 19일 일본공사관 이등서기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한일협약 체결 등에서 활약하면서 신임을 얻었다

  • 하나부사 요시모토 / 花房義質 [정치·법제/외교]

    1842-1917. 일본 외교관. 임오군란 당시 조선 주재 일본공사. 일본적십자 사장. 1872년 외무대승으로 승진. 이때 청국과 조선에 파견되었다. 1873년 러시아공사관 서기관 임명, 에노모토 다케아키 공사를 도와서 사할린, 쿠릴열도 교환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당시

  • 하난사 / 河蘭史 [교육/교육]

    1868-1919년. 교육자·여성운동가. 평양 출신. 본명은 알 수 없으며, 영어 이름은 낸시(Nancy)였다. 남편인 하상기(河相驥)의 성을 따서 하란사라 하였다.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다가 1896년 미국 오하이오 웨슬레이안대학(Ohio Wesleyan大學)으로 유학을

  • 하라 다카시 / 原敬 [정치·법제/외교]

    1856-1921. 일본 외무관료 수상. 1876년 사법성법학교에 퇴학당하고 <우편보지신문>의 기자가 되었다. 1881년 <대동일보>의 주필이 되었다. 이노우에 가오루를 알게되어 1882년 대동일보사 퇴사 후 외무성 어용괘로 채용되었다. 이어서 천진 영사, 주불공사관

  • 하보경 / 河寶鏡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경남 밀양 출신. 밀양백중놀이의 보본계(報本契)라는 친목단체인 농악단원이었던 부모 하성옥(河聖玉)·이삼선의 사이에서 태어나, 걸립농악단의 모갑(某甲)이면서 큰북을 치기 시작하여 가락과 춤동

  • 하세가와 요시미치 / 長谷川好道 [정치·법제/외교]

    1850-1924. 한국 주둔 일본군 사령관. 제2대 조선 총독. 1871년 육군 대위로 임관하였다. 1886년 소장으로 진급하여 보병 제12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에 참전하였고, 1896년 중장으로 승진하였고 제2사단장이 되었다. 1904년 9월 5

  • 하수일 / 河受一 [종교·철학/유학]

    1553(명종 8)∼1612(광해군 4) 조선 중기의 문신. 공진의 후손, 형의 증손, 할아버지는 희서, 아버지는 면, 어머니는 조정견의 딸이다. 1591년(선조 2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07년 형조좌랑·형조정랑을 거쳐 현감까지 지냈다. 문집으로 『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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