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총 2,11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최면식 / 崔勉植 [역사/근대사]
1891-1941. 독립운동가. 경기도 포천 출신.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약한 애국지사이다. 1914년 제1차세계대전 발발로 정국이 어수선할 때 만주로 망명할 것을 계획하여 황해도 해주 오찬근(吳讚根)의 집에서 자금을 모으다가 일본경찰
최명석 / 崔命錫 [역사/근대사]
1913-196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사천군(泗川郡) 삼천포면(三千浦面)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상남도 부산(釜山) 범일동(凡一洞)이다. 1933년 1월 2일 부산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중, 동료 교사 김두영(金斗榮) 등과 함께 남산동(南
최명식 / 崔明植 [역사/근대사]
1880-196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긍허(兢虛). 청년들을 계몽시키기 위해 면학회를 조직하고 산업 증진과 교육의 장려 등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였다. 신민회에 가입하였으며 상하이 임시정부, 한국독립당에서 꾸준히 정치활동을 펼쳤다.
최명현 / 崔明鉉 [역사/근대사]
1892-1944. 독립운동가. 황해도 해주 출신. 1919년 2월 해주군 해주읍 남본정(南本町) 예배당 목사 오현경(吳玄卿)이,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인 박희도(朴熙道)가 김명신(金明信)을 통하여 보낸 독립선언문 300매를 인수하고, 만세시위를 준비할 때 참여하였다
최범술 / 崔凡述 [종교·철학/불교]
1904년(광무 8)∼1979년. 승려‧독립운동가‧교육자‧다도인(茶道人)‧정치가. 초명은 영환(英煥), 당호는 금봉(錦峰), 법호는 효당(曉堂)이고, 경상남도 사천 출신이다. 1916년 사천 다솔사(多率寺)로 출가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배포
최병규 / 崔丙圭 [역사/근대사]
1881-1931. 독립운동가. 대구 출신.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단체의 대표적인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약한 애국지사이다. 1915년에 결성된 대한광복회의 회원으로 군자금 수합에 힘을 쏟던 중, 1916년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朴尙鎭)의 계획하에 김진만(金鎭萬)의
최병무 / 崔秉武 [역사/근대사]
1918-194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대동(大同)이다. 평안남도 평양(平壤) 숭실상업학교(崇實商業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 재학 도중 일본인에 의한 조선인 차별 정책을 체험하고, 6월 13일 동지들과 함께 항일비밀결사단체인 일맥회(一麥會
최병선 / 崔秉善 [역사/근대사]
1886-1943년. 독립운동가. 일명 동선(東善)·병선(炳善). 평안북도 정주 출신. 1919년 3·1운동 때 고향 정주에서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잡혀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 1월 출옥과 동시에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공동조계에 거주하면서 영
최병수 / 崔炳秀 [역사/근대사]
1876-1919.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아산 출신.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고, 선장면·신창면·도고면 등 3개 면민의 연합만세운동 총책임자로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4월 4일 200여명의 만세시위군중이 모인 선장 장
최병일 / 崔秉一 [역사/근대사]
1883-193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치순(崔治順)이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安城)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이유석(李裕奭)·최은식(崔殷植)·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