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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최찬 / 崔燦 [역사/근대사]
1885-1921. 독립운동가. 일명 광윤(光胤). 자는 성조(聖祚). 황해도 벽성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 해주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고, 그해 10월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담, 활동하였다. 1920년 5월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
최찬식 / 崔瓚植 [문학]
현대의 소설가(1881∼1951). 관립한성중학교에서 수학, 문학에 뜻을 두어 1907년에 중국 상해에서 발행한 소설전집 《설부총서》를 번역한 뒤 신소설 창작에 착수한다. 말년에는 최익현의 실기를 집필했으나 끝내지 못하고 죽었다.〈추월색〉을 비롯하여〈안의 성〉·〈금강
최창걸 / 崔昌傑 [종교·철학/유학]
1707년(숙종 33)∼1781년(정조 5). 조부는 최후징, 아버지는 최석태, 외조부는 윤동형, 아들 최수침과 최수노가 있으며, 외손으로 성원묵이 있다. 어려서부터 옛 성현들의 학문에 전념했다. 관찰사가 천거하여 1753(영조 29)에 참봉에 제수되어 양지현감에 이
최창대 / 崔昌大 [종교·철학/유학]
1669(현종 10)∼1720(숙종 46).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명길 증손, 석정 아들, 어머니는 이경억의 딸이다. 169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검열·설서·부수찬을 거쳐 1698년 암행어사가 되었다. 이어 교리·이조좌랑·헌납·응교를 거쳐 1704년 사
최창섭 / 崔昌燮 [역사/근대사]
1893-1969. 독립운동가. 경기도 파주 출신. 1919년 3·1운동 때 고향 파주군 교하면 장터에서 황인수(黃麟秀) 등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고, 같은해 비밀독립운동단체인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에 입단, 독립투쟁에 헌신하게 되었다. 1920년 상해(
최창식 / 崔昌植 [역사/근대사]
1892-1957. 독립운동가. 서울 출신. 일찍부터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펴다가 1916년 12월에 체포, 징역 8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18년 오성학교(五星學校) 교사로 있을 때 학생들에게 민족의식·독립주의·주인의식을 고취하다가 문제가 되어 금고 1년형을
최창익 / 崔昌益 [역사/근대사]
1896-1957. 독립운동가·공산주의운동가. 함경북도 온성 출생. 창석(昌錫)·창순(昌淳)·동우(東宇) 등의 이름을 쓰기도 하였으며, 여성공산주의운동가 허정숙(許貞淑)의 남편이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정경과를 졸업하였다. 일본유학중 학우회(學友會)를 조직하고
최천익 / 崔天翼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농수고』, 『농수집』 등을 저술한 시인.여항시인. 아버지는 흥해의 아전이었던 준걸(俊傑)이다. 어려서 같은 고을의 운와(耘窩)라는 사람에게 배웠으며, 이형상(李衡祥)에게서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집안 대대로 흥해의 군리(郡吏)였는데, 그만은 열심히 공부해서
최천호 / 崔天浩 [역사/근대사]
1900-1989. 독립운동가. 이명은 만년(萬年).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어 중국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으로 건너가 이용규(李龍奎)·김관봉(金寬鳳)·김광진(金光振) 등의 권유로 오동진(吳東振)을 단장으로 하는 광제청년단
최철 / 崔鐵 [역사/근대사]
1919-미상. 광복군. 경기도 개성 출신. 광복군 일성(一成)의 동생이다. 1938년 형 일성과 함께 뤄양(洛陽)으로 건너갔다. 1940년 10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입대하는 한편,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 특과총대학원대한청반(中央戰時幹部訓練
최충 / 崔沖 [종교·철학/유학]
984-1068. 고려시대의 유학자. 1005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문종 초에 문하시중으로 있으면서 고려형법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055년 9재학당이라는 최초의 사학을 창립하여 구경과 삼사를 가르쳤다. 고려 유학을 흥성시켰으며 해동공자라고 불리웠다
최충성 / 崔忠成 [종교·철학/유학]
1458(세조 4)∼1491(성종 22). 조선 전기의 학자. 최덕지의 후손, 아버지는 별이다. 김굉필의 문인이 되어『소학』을 배웠으며 뒤에 정여창의 제자가 되었다.『소학』을 실천수행의 근본으로 삼았다. 김안국·남효온과는 동문 사이였다. 영암의 녹동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최치운 / 崔致雲 [종교·철학/유학]
1390(공양왕 2)∼1440(세종 22). 조선 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원량, 아버지는 안린, 어머니는 전인구의 딸이다. 1417년 식년문과에 동진사로 급제, 공조참의, 이조참의, 좌승지,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왕명으로『무원록』을 주석, 율문을 강해하는 등
최치원 / 崔致遠 [종교·철학/유학]
신라 말의 유학자. 869년 당나라에 유학하였다. 거기에서 과거급제했으며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유명한 격문을 지었다. 885년 귀국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만년에는 명산대천을 찾아 두루 다녔다. 유, 불, 선 3교를 조화시키고 융합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즉 유교의 '인
최태용 / 崔泰瑢 [종교·철학/개신교]
1897-1950년. 목사, 복음교회의 창설자. 호는 시남(是南). 함경남도 영흥 출신. 청년기에 수원농림학교에 입학하여 3년 동안 공부하였으며 이 시기에 기독교인이 되었다. 졸업 후 연희전문학교 농업실습지도원으로 2년간 근무하며 신앙활동을 계속하다가 1920년 일본
최태환 / 崔太煥 [역사/근대사]
1897-198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영산(瀛山)이다. 본관은 양주(楊州)이고, 전라북도 정읍(井邑) 출신이다. 1926년 6월 10일 순종황제 인산일(因山日)에 종이로 백기(白旗)를 만들어 집집마다 달았다. 그도 이 일에 동참하였으며 이 일로 인하여 일본
최팔용 / 崔八鏞 [역사/근대사]
1891-1922. 2·8독립선언의 조선청년독립단대표 중의 한 사람.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당남(塘南). 함경남도 홍원 출신. 1910년 봄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몇 달 뒤 일제에 조국이 강점당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오성중학교(五星中學校)를 졸업하였다. 다
최학소 / 崔學韶 [역사/근대사]
1916-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본적은 강원도 울진(蔚珍)이다. 수헌공(睡軒公) 최응현(崔應賢)의 후손으로, 부친 최익한(崔益翰)의 4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2000년 독립운동 공훈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최학송 / 崔鶴松 [문학]
1901-1932. 소설가. 신경향파문학의 대표적 작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각지를 떠돌며 품팔이, 나무장수, 두부장수 등 밑바닥 생활을 했다. 이 체험이 바로 그의 문학의 바탕이 되어, 1924년 <조선문단>에 <고국>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 <탈
최한기 / 崔漢綺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실학자·과학사상가(1803∼1879). 적극적으로 서양의 과학기술을 도입하였고 서양의학서인《신기천험》을 저술하는 등 서양학문을 소개하는데 힘썼다. 김정호와도 친분이 두터웠고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나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