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최일명 / 崔日明 [역사/근대사]
1888-1976. 독립운동가. 평양 출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평양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1920년에는 평양의 서성리교회에서 청년단을 조직하고 상해(上海)로부터 몰래 들어온 선우 혁(鮮于爀)과 함께 평안남도내에서 군자금을 거두어 상해로 전달하였다
최일엽 / 崔日燁 [역사/근대사]
미상-1921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일엽(崔日曄)이다. 출신지는 평안북도 선천이다. 1919년 만주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의 집동총관(輯東總管)을 지냈다. 1919년 중국인으로부터 개척지
최자 / 崔滋 [문학/한문학]
고려후기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판이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문신. 명유(名儒)인 문헌공 최충(崔冲)의 6대손이다. 우복야 최민(崔敏)의 아들이다. 1212년(강종 1) 문과에 급제하여 상주사록(尙州司錄)이 되었다. 치적이 우수하여 국자감 학유(國子監學諭)에 이르렀
최자남 / 崔子南 [역사/근대사]
1876-1933. 독립운동가. 황해도 재령 출신. 노령(露領) 시베리아로 건너가 그곳에서 장사를 하였다. 1915년경부터 독립운동가들과 접촉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사이토(齋藤實)총독 저격사건을 일으킨 강우규(姜宇奎)와는 약 4개월간 같이 집에서 기거하기도 하였다.
최재서 / 崔載瑞 [문학]
1908-1964 영문학자. 문학평론가. 황해도 사람. 경성대학 영문과 졸업 후 영국 런던대학에 유학. 귀국하여 경성대학 강사, 보성전문, 법학전문 교수 등을 지냈다. 1934년부터 문학평론을 시작했고, 1940년대에는 이른바 <국민문학론>을 제창, 친일문학운동에 선
최재석 / 崔在錫 [역사/근대사]
1897-195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재식(崔在植)이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安城)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이유석(李裕奭)·최은식(崔殷植)·홍
최재형 / 崔在亨 [역사/근대사]
1858-1920년. 독립운동가. 일명 재형(在衡)·도헌(都憲). 러시아 이름은 뻬돌쏘오, 최뻬찌카. 함경북도 경원 출신.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노우키에프스크(煙秋)에 이주하여 러시아에 귀화하였다. 러시아 군대의 어용상인(御用商人)으로 치부하여 관리가 되고
최정기 / 崔貞基 [역사/근대사]
1913-200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광주(光州)이다. 광주농업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6년 재학 중 동학생 김남철(金南哲)·김순복(金順福)·정욱(鄭昱)·조길룡(曺吉龍) 등 20여 명과 함께 결의를 하여 항일비밀결사단체인 독서회를 조직하고,
최정민 / 崔貞敏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대한축구협회 이사를 역임한 체육인. 1930∼1983. 평안남도 대동 출신. 어려서부터 축구에 재질을 보였으며, 평양 종로국민학교와 평양 체신전문학교를 다니면서 배구·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1·4후퇴로 남하하여 육군특무부대인 CIC팀에 입적하였으며, 김
최정호 / 崔挺豪 [종교·철학/유학]
1563년(명종 18)∼미상. 증조부는 최홍, 조부는 최대관, 부친은 최수도, 처부는 김복일이다. 1603년(선조 36) 계묘 식년시 병과 19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1623년(광해 1)에 사간원정언에 제수되었는데, 사관은 어리석고 용렬하다고 평하였다. 이후 정인홍에
최제우 / 崔濟愚 [역사/조선시대사]
조선 후기의 동학인·교조(1824∼1864). 동학을 창시하고 1861년 포교를 시작하였다. 경주에 정착한 뒤 전국 각지로 교세가 퍼지기 시작하였으나 조정에서 파견된 정운구에 의해 체포된 후 처형되었다.
최제학 / 崔濟學 [역사/근대사]
1882-1959. 일제강점기 유학자·독립운동가. 자는 중열(仲悅)이고, 호는 습재(習齋)이다. 본관은 탐진(耽津)이고, 전라북도 진안(鎭安) 성수(聖壽) 목동 출신이다. 독립운동 당시에는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에서 지냈다. 고려 인종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최종기 / 崔宗箕 [종교·철학/천도교]
1883-1953년. 일제강점기 천도교인·독립운동가. 호는 표암(杓菴)이다.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운암면(雲岩面) 지천리(芝川里) 출신이다. 조부는 지포(芝圃) 최봉성(崔鳳成)이며, 부친은 복암(復庵) 최승우(崔承雨)이다. 평생을 종교운동과 구국운동에 종사하였다.
최종준 / 崔宗駿 [종교·철학/천도교]
1870-1937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천도교인. 본적은 함경남도 이원(利原)이다. 천도교 신자로 함경남도 이원교구장(利原敎區長)을 지냈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공시우(孔時祐)·박승룡(朴承龍)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최종협 / 崔宗協 [역사/근대사]
1879-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이종흡(李鐘洽)이다. 거주지는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하다면(何多面)이다. 함경남도 단천군 하다면·복귀면·수하면·이중면 지역 주민들은 평소 땔나무를 팔고 숯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최중호 / 崔重鎬 [역사/근대사]
1891-1934. 독립운동가. 황해도 신천 출신. 1906년 황해도 안악에서 김구(金九)와 함께 공부하다가 뒤에 평양으로 건너가 대성학교(大成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08년 김구가 독립투쟁을 전개하다가 잡힌 뒤 그뒤를 이어 독립투쟁을 계승, 발전시켰다. 그러나 19
최지관 / 崔志寬 [역사/근대사]
1868-1930.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구성 출신. 3·1운동 후 만주에 건너가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에 가담, 국내 특파원에 선출되고 이해 민국독립단이 임시정부 산하인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에 통합되자 역시 국내 특파원이 되어 평안북도의 연통제(聯通制)조직의 임
최진동 / 崔振東 [역사/근대사]
미상-1945. 독립운동가. 일명 명록(明錄, 明祿)·희(喜). 함경북도 온성 출신. 일찍이 만주로 건너가서 중국군(中國軍)에 가입, 군사지식과 전투실력을 함양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그의 3형제와 같이 조국광복을 위하여 헌신분투할 것을 결의하고 동지
최진립 / 崔震立 [종교·철학/유학]
1568(선조 1)∼1636(인조 14). 조선 중기의 무신. 득정 증손, 할아버지는 삼빙, 아버지는 신보, 어머니는 황사종 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동생 계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가덕참사, 경흥부사, 공조참판,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하였다. 저
최진하 / 崔鎭河 [역사/근대사]
1890-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남도 평양(平壤)이다. 1916년 미국으로 망명한 뒤 1945년 해방 때까지 미주 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에서 활동하였다. 1917년 북미 대한인국민회 총무를 지냈다. 1937년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