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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
장덕수 / 張德秀 [역사/근대사]
1895-1947.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설산(雪山). 1916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1920년 4월 〈동아일보〉 창간과 더불어 초대 주필이 되었다. 1934년에는 임시정부 재무행서 뉴욕 지부 책임자로 독립운동자금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장덕진 / 張德震 [역사/근대사]
미상-1924. 항일독립운동가. 황해도 재령 출신. 붕도(鵬道)의 아들이다. 1920년 8월 하순 미국의원단 49명이 내한할 때, 광제청년단장(廣濟靑年團長) 오동진(吳東振)의 명을 받고 박태열(朴泰烈) 등과 황해도일대의 일제기관을 폭파하려 하였으나, 거사계획이 사전에
장두량 / 張斗良 [역사/근대사]
1895-1954.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부령 출생. 1919년 3·1운동 당시 청진부(淸津府) 신암동(新岩洞)·포항동(浦項洞)에서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부령군 청암면(靑岩面) 자작동(自作洞)에 거주하고 있던 그는 월산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열람하고, 또 서울 및
장두언 / 張斗彦 [역사/근대사]
1881-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에 있는 국민회(國民會)의 통신부장(通信部長)으로 활약하였다. 일본군에 체포되는 과정에 저항하다가 화룡현 서동포(西洞浦)에서 피살되었다. 1991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
장두환 / 張斗煥 [역사/근대사]
1894-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17년 대한광복단에 입단하여 각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고 조달하는데 힘썼다. 이종국의 밀고로 발각되어 붙잡혔고, 복역하던 중 1921년 4월 옥사하였다.
장두희 / 張斗熙 [역사/근대사]
1883-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 풍산면(豊山面)이다.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독립만세운동에 고무되어 김정익(金正翼)·손영학(孫永學)·김정연(金正演) 등과 함께 거의(擧義)할 것을 다짐하였다. 1919년 3월 2
장봉한 / 張鳳漢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종성 출생.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범윤(李範允)·최재형(崔在亨)의 부하로 활약하였고, 노령의 추풍(秋風) 달자동(達子洞)에서 800여 명으로 결사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9월 홍범도(洪範圖)와 함께 부하 약 50
장석영 / 張錫英 [역사/근대사]
1851-1929. 독립운동가·유학자. 본관은 인동(仁同). 일명 석교(碩敎). 호는 회당(晦堂). 경상북도 칠곡 출신. 1905년 일제가 무력으로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통분하여 일제침략을 규탄하고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형을 요청
장석천 / 張錫天 [역사/근대사]
1903-1935. 광주학생운동 주동자. 전라남도 완도 출신. 수원고등농림학교를 2년간 수료한 뒤 1926년 동경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4개월 만에 퇴학당하였다. 1927년 3월부터 전라청년연맹 상임위원, 전남청년연맹 위원장 등을 지냈고, 강해석(姜海錫)·박인수
장석함 / 張錫咸 [역사/근대사]
1889년(고종 26) 3월 15일∼1951년 4월 5일.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함경남도 함흥(咸興)이다. 1908년(융희 2) 국권회복을 위한 단지동맹회(斷指同盟會), 신민회(新民會) 등에서 활동 하였다. 중국 용정(龍井) 신촌(新村)에 영신학교(永新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