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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선사 > 청동기_고조선
청동기시대 / 靑銅器時代 [역사/선사시대사]
인류가 청동기(靑銅器)라는 금속재료를 주로 사용하며 문명을 꽃피운 시대. 청동기시대라는 용어는 고고학(考古學)에서 인류 역사의 발달과정을 사용한 도구의 재료를 기준으로 나눈 3시대, 즉 석기시대(石器時代), 청동기시대, 철기시대(鐵器時代)의 하나이다. 처음 이 용어를
청동방울 / 靑銅─ [역사/선사시대사]
여러 개의 방울이 달려 흔들어 소리를 내게 하는 청동기. 청동기시대 말기∼초기철기시대에 제사장 혹은 군장이 종교의례에 사용하였던 무구(巫具)로서 팔주령(八珠鈴), 쌍두령(雙頭鈴), 조합식쌍두령(組合式雙頭鈴), 간두령(竿頭鈴) 등이 있다.
팔두령 / 八頭鈴 [예술·체육/공예]
청동기시대 의구(儀具)의 하나. 팔주령(八珠鈴)·팔령구(八鈴具)라고도 하는, 흔하지 않은 청동방울로, 석관묘(石棺墓) 같은 무덤에서 한 쌍으로 나오고 있다. 불가사리꼴로 생겼는데, 납작한 판(體盤)에 여덟 방향의 방사꼴(放射形)로 퍼진 돌기 끝에 둥근 방울이 하나씩
평양휴암리주거지 / 平壤休岩里住居址 [역사/선사시대사]
평양시 사동구역 휴암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유적. 1959년 4월평양시 동북쪽 대동강 남쪽의 목재저장소에서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북한의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1기(基)의 주거지를 확인하였다. 주거지는 일부분만 확인된 것이어서 전체
학익지석묘 / 鶴翼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의 인천광역시립박물관 경내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1995년 11월 14일 인천광역시 지방지정문화재 기념물 제34호로 1기가 지정되었다. 원래 위치인 학익동은 지금은 완전히 내륙의 시가지가 되었지만 원래는 바닷가에 임한 경사 완만한 지역으로
한국형동검 / 韓國型銅劍 [역사/선사시대사]
청동기시대의 동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동검은 전기의 요령식동검(遼寧式銅劍, 또는 비파형·만주식 동검)과 후기(또는 초기철기시대)의 세형동검(細形銅劍)으로 대별된다.요령식동검은 창(槍)과 같은 상반부와 거기서 일단 좁아졌다가 다시 볼록하게 아래로 퍼지는 비파와 같은
홈자귀 / 有溝石斧 [역사/선사시대사]
자루가 날부분과 직각이 되게 이루어졌으며, 부신(斧身) 한 쪽에 끈을 묶기 위한 홈을 파놓은 자귀. ‘유구석부(有溝石斧)’라고도 한다. 목재를 가공하는데 주로 쓰였다. 청동기시대 중기인 서기전 7세기경에 나타나 철기시대인 서기전후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중국의
환호 / 環濠 [역사/선사시대사]
취락을 방어하기 위해 시설된 도랑. 취락을 감싸는 형태의 도랑이 만들어지는 시점은 청동기시대부터이다. 이러한 취락을 환호취락(環濠聚落)이라고 부른다. 환호취락은 이후 초기철기시대와 원삼국시대에도 이어지고 삼국시대 이후에는 본격적인 성곽의 축조와 함께 자취를 감춘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