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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대 > 남북국시대
수성 / 輸城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청진시 수성동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역참(驛站). 본래 발해 때 용원부(龍原府)였는데 여진이 이 곳을 차지하여 용이(龍耳)라고 하였다. 그 뒤 고려 공민왕 때 수복되었고 조선 태조 때 만호(萬戶)를 두었으며, 경성도호부(鏡城都護府)의 관할에 두었다. 남쪽
신라화엄경사경조성기 / 新羅華嚴經寫經造成記 [언어/언어/문자]
755년 80권본 『화엄경(華嚴經)』를 필사한 경권(經卷) 끝부분에 제작에 관련된 여러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이두식 문장으로 적은 기록. 사경(寫經) 작업의 경과, 발원(發願), 사경 작업, 서원시(誓願詩), 열함(列銜) 등의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경덕왕 13년(754
신복 / 新復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고령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신라의 가시혜현(加尸兮縣)이었는데, 경덕왕 때신복현으로 고쳐 고령군(高靈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그 뒤의 변화는 자세하지 않고, 현의 서쪽 10리 되는 곳에 가서곡(加西谷)이 있는데 시혜(尸兮)가 변하여 서(西)가 된 것으로 추측한
신유림 / 神遊林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경주지역의 옛 지명. 『삼국유사』에는 경주에 7개의 가람터가 있는데, 그 중 신유림의 천왕사(天王寺)는 문무왕 때 건조되었다는 것과 신유림은 고승(高僧) 명랑(明朗)이 만들었고 낭산(狼山)의 남쪽 기슭에 있으며, 명랑은 당나라 군사의 침입을 능히 막을 수 있는
안인 / 安仁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문경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신라의 난산현(蘭山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안인으로 고쳐 보주(甫州)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시대에 작성현(鵲城縣)으로 바뀌고, 조선시대에 예천군 동로면(冬老面)이 된 것으로 보인다. 1895년(고종 32) 문경군에 편입되었고, 19
압해 / 壓海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신안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아차산현(阿次山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압해로 고쳐 갈도(碣島)·안파(安波)·염해(鹽海) 등 3개의 현을 관할하게 하였다. 고려 현종 때 영광군에 예속시켰다가 뒤에 나주로 옮겼다. 그 뒤 왜구의 침입으로 주민들이 나주의
야로 / 冶爐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합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신라의 적화현(赤火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야로현(冶爐縣)으로 고쳐 고령군의 영현으로 하였다가 고려 현종 때 합천군으로 이속시켰다. 조선시대에는 합천군 현내면(縣內面)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상북면(上北面)
야청도의성 / 夜聽擣衣聲 [문학/한문학]
발해의 시인 양태사(楊泰師)가 지은 한시. 양태사는 발해 문왕 때 귀덕장군(歸德將軍)으로 시에 능하였다. 759년(문왕 23)에 일본에 부사(副使)로 갔다가 송별연에서 「밤에 다듬이 소리를 듣는다[夜聽擣衣聲]」는 시를 지어 읊었다 한다. 일본에서 편찬한 한시집 『경국집
약장 / 約章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포항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악지현(惡支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약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려 때 경주에 속하게 되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영일군에 속하게 되었다. 현의 소재지는 동악봉(東嶽峰) 아래였다. 신라 때에는 천태산(天台山)·토함산(吐含山)·독
여량 / 餘糧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마진량현(麻珍良縣, 또는 磨彌良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여량으로 고쳐 장산군(獐山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1018년(현종 9) 구사부곡(仇史部曲)으로 강등시켜 경주에 귀속시키고 월경처(越境處)를 삼았다. 165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