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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구로다 기요타카 / 黑田淸隆 [정치·법제/외교]
1840-1900. 일본 육군 중장, 정치가.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일본 대표. 1876년 1월 수행원 250명을 대동하고 부산에 입항한 후 1월 말에 강화도에 도착하였다. 그는 조선과 일본에 조약 체결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13개조의 조약안을 제시하였다. 2월 26일
구로동맹파업 / 九老同盟罷業 [사회/사회구조]
1985년 6월 24일부터 29일까지 구로지역의 민주노조들이 노조운동탄압에 맞서 벌인 동맹파업과 지지연대투쟁. 1983년 말 정권의 유화조치로 노동운동이 일시 활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1985년 4월 대우자동차투쟁을 기점으로 노동운동은 다시 탄압받게 되었다. 민주노조운
구로성 / 舊老城 [예술·체육/건축]
중국 요령성 무순시 신빈만족자치현(新賓滿族自治縣)에 있는 삼국시대 포곡식으로 축조된 고구려의 성곽. 이도하자촌(二道河子村) 동남쪽에 위치한다. 남쪽으로 해발 375m의 최고봉을 비롯한 5개의 산봉우리를 연이어 성벽을 축조하고 북쪽으로 계곡과 완만한 경사지대를 끼고 있는
구룡강 / 九龍江 [지리/자연지리]
북한의 행정구역상 평안북도 창성군·초산군·운산군의 경계인 달은내령(月隱乃嶺)과 구봉산(九峯山, 881m) 부근에서 발원하여 청천강에 합류하는 하천. 청천강의 지류로, 길이 125.6㎞, 유역면적 1,350㎢, 유역평균너비 10.8㎞, 유역의 완전도 0.09, 물매 4.
구룡령 옛길 / 九龍嶺─ [지리/자연지리]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 있는 명승. 구룡령 옛길은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서 홍천군 내면 명개리를 잇는 해발 1,013m의 높은 고갯길이다. 2007년에 명승 제29호로 지정되었다. 옛길은 양양과 고성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갈 때 주로 이용하던 길로, 보행자들이 다니
구룡사 대웅전 / 龜龍寺大雄殿 [예술·체육/건축]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구룡사에 있었던 조선시대 에 창건된 사찰건물.불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다포식(多包式) 팔작지붕건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2004년 1월 17일 유형문화재에서 해제되었다.전면에는 높직한 자연석
구룡재문집 / 九龍齋文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학자 백봉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3년에 간행한 시문집. 23권 10책. 목활자본. 1893년(고종 30) 그의 증손 치진(致鎭), 종현손 관수(寬洙)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헌영(李0x9C97永)·박치복(朴致馥)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백영수
구룡폭포 / 九龍瀑布 [지리/자연지리]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에 있는 폭포. 온정리 소재지에서 약 30리쯤 되는 신계천의 위쪽 구룡연 구역에 있다. 이 폭포는 설악산의 대승폭포(大勝瀑布), 개성 대흥산성(大興山城)의 박연폭포(朴淵瀑布)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폭포 중 하나이며, 금강산 십이폭포(十二瀑布)·비봉
구루문안 / 句漏文案 [역사/조선시대사]
조선후기 문신 이휘부가 경상도 단성현감으로 재직하면서 지방 통치와 관련된 업무를 기록한 일지.공무일기. 『구루문안(句漏文案)』은 이휘부가 1851년~1853년 사이에 단성현에서 시행한 행정 및 재정 업무 관련 공문서 기록을 후대에 모아서 편찬한 것이다. 원래 몇 권으로
구류장 / 拘留場 [정치·법제/법제·행정]
구류 처분을 받은 사람을 가두어 두는 곳이다.
구릉지 / 丘陵地 [지리/인문지리]
산지보다 규모가 작고 평지보다 침식이 덜 되어 완만한 경사면과 골짜기를 이루는 산지와 평지의 중간 형태를 갖는 지형. 구릉지는 평지 또는 대지에 비해 고도가 높고, 산지에 비해서는 낮다. 산지나 대지, 구릉지와의 고도 차는 최근 수십 만년 내지 수백 만년의 지각변동(地
구리 동구릉 건원릉 정자각 / 九里 東九陵 健元陵 丁字閣 [예술·체육/건축]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전기 건원릉의 능 아래에 건립한 정자각(丁字閣).능건축. 보물. 보물 제1741호. 정자각은 산릉에서 행해지는 상례의 중심건물로서 국장의례가 끝나고 삼년동안 산릉의 조석상식과 주다례를 행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장례기간이 끝나면 길례가 행해지는 곳
구리 동구릉 숭릉 정자각 / 九里 東九陵 崇陵 丁字閣 [예술·체육/건축]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후기 18대 현종과 비의 능침인 숭릉에 건립한 정자각(丁字閣).능건축. 보물. 보물 제1742호. 숭릉은 조선 18대 현종과 비 명성왕후를 모신 무덤으로 동구릉 서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숭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왕과 왕비의 능을 나란히 조성한
구리갈매동도당굿 / 九里葛梅洞都堂─ [종교·철학/민간신앙]
경기도 구리시 갈매동에 전승되는 도당굿. 경기도무형문화재 제15호. 마을의 안녕함과 풍요를 비는 마을굿으로 제당은 마을 뒷 편 도당산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당집 상량문 기록으로 보아 1935년 당집을 세운 듯하다. 격년마다 봄에 치러지는 이 굿은 전형적인 경기도 북부
구리교문동유적 / 九里橋門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적. 1932년과 1934년 2차에 걸쳐 일본인 요코야마(橫山將三郎)가 교문리일대에서 민무늬토기조각과 석기를 채집하였는데, 이들 유물들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토기는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와 덧띠토기[粘土帶土器
구리노 신이치로 / 栗野愼一郞 [정치·법제/외교]
1851-1937. 일본 외교관. 주미, 주러, 주불 일본 공사. 1881년 외무성에 채용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때에는 시모노세키로 출장을 갔고, 1884년 갑신정변 당시에는 인천으로 출장을 가서 사건을 조사하였다. 1902년 2월13일 구리노는 러시아 외상인 람즈
구리시 / 九里市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중앙에 위치한 시. 동쪽은 남양주시·광주시, 서쪽과 남쪽은 서울특별시, 북쪽은 남양주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7°06'∼127°10', 북위 37°33'∼37°39'에 위치한다. 면적은 33.29㎢이고, 인구는 18만 6721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
구리인창동유적 / 九里仁倉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적. 토기는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ㆍ외반구연토기(外反口緣土器)ㆍ쇠뿔잡이토기[牛角形把手附土器] 등의 조각들이고, 석기는 도끼ㆍ자리ㆍ끌ㆍ대팻날[扁平單刀石斧]ㆍ홈자귀[有溝石斧]ㆍ반달칼ㆍ슴베식돌검[有莖式石劍], 독사머리형ㆍ삼각형의 돌
구리태조건원릉신도비 / 九里太祖健元陵神道碑 [예술·체육/서예]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전기 제1대 태조의 능인 건원릉에 세워진 신도비. 보물. 보물 제1803호. 경기도 구리시의 동구릉(東九陵) 내에 위치한 건원릉 신도비는 1409년(태종 9) 4월에 건립되었다. 태종의 명을 받아 길창군(吉昌君) 권근(權近)이 비문을 짓고 좌정
구마검 / 驅魔劒 [문학/현대문학]
이해조(李海朝)가 지은 신소설. 1908년대한서림(大韓書林)에서 출간하였다. 중국 만청(晩淸)의 견책소설(譴責小說)인 장자(壯者)의 「소미추(掃迷帚)」에서 영향을 받고 이해조가 창의성을 가미한 작품이다. 개화기를 배경으로 하여 미신타파를 다루었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