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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조선여자체육장려회 / 朝鮮女子體育奬勵會 [예술·체육/체육]
1930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체육단체. 김인순(金仁順) 등 50여 명이 발기하여 1930년 5월 20일 관훈동에 있는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초대 회장에는 조동식(趙東植)이 취임하였다.당시의 취지문을 통하여 창립 목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
조선여지일통 / 朝鮮輿地一統 [언론·출판/출판]
사부(史部) - 지리류(地理類) 강덕오(姜德五)편, 신연활자본, 한양서원, 1931, 2권 1책. 발문은 최영년(崔永年)이 썼다. 마지막 장은 낙장이다. 제첨지가 훼손되어 있다.
조선연극문화협회 / 朝鮮演劇文化協會 [예술·체육/연극]
일제 말 예능의 일원화를 기하고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조선연극협회와 조선연예협회를 통합 발족시킨 단체. 1942년 7월 26일 발족한 이 단체의 회장에는 신도요, 이사에 서항석 외 몇 명, 상임평의원에 유치진 외 몇 명이 임명되었다. 1944년 4월 '연극 연예 흥행
조선연극사 / 朝鮮演劇史 [예술·체육/연극]
조선어문학회의 조선어문학총서 31집으로 1933년 5월에 총 230면으로 간행된 노정 김재철의 유저. 김태준의 서, 목차, 본문, 경론, 부록의 순으로 되어 있다. <조선연극사>는 연극학 제1세대의 결정으로서, 수백년동안 전해 내려오던 한국 연극의 윤곽을 잡아놓았고 그
조선연극사 / 朝鮮演劇舍 [예술·체육/연극]
취성좌가 해체되고 그 후신으로 1929년 12월 창단한 극단. 지두한을 중심으로 이경환, 강홍식, 천한수, 권일청 등 당시 대중연극의 스타급인 30여 명의 단원과, 밴드부 30여 명, 그리고 연구생까지 합쳐 90여 명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상업극단이었다. 1933년에 전
조선연극협회 / 朝鮮演劇協會 [예술·체육/연극]
1936년 8월 오정민, 박학, 이화삼 등 동경유학생들과 극예술연구회의 조직적 모순에 불만을 품고 극연실천부를 탈퇴한 사람들이 모여 신극운동의 보다 순수한 목표를 실현코자 만든 단체. 1936년 10월 부민관에서 몰리에르의 <수전노>를 가지고 창립공연을 가졌는데, 오정
조선영화 / 朝鮮映畵 [예술·체육/영화]
북한의 영화분야 잡지. 조선영화인동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로서 1957년 7월에 창간되었다. 크기는 B5배판, 분량은 초기에는 50면, 1970년대에는 120면 내외였으나 현재는 80면이며 문학예술종합출판사에서 발행하고 있다. 내용은 대부분 평론과 새로 제작된 영화해설
조선영화감독구락부 / 朝鮮映畵監督俱樂部 [예술·체육/영화]
일제 말기 조선영화통제회사 시대에 한국인 영화감독만이 모여서 결성한 단순한 친목단체. 1943년 말에 발족하여 광복과 더불어 해산되었다. 이병일, 최인규, 신경균, 박기채, 이필우, 이명우 등이 참여하였다. 해산 후 영화재건에 대한 업무는 대한영화협의회로 계승되었다.
조선영화령 / 朝鮮映畵令 [예술·체육/영화]
1940년 1월 조선총독부가 제령 제1호로 공포한 조선영화법으로 전문 28조 300항. 영화에 종사하는 자(제작, 배급, 흥행)는 허가를 받아야 하고, 명령대로 하지 않으면 처벌, 취소하고, 예방을 위해서 임검하고,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취업을 제한한다고 되어 있어 조
조선영화인협회 / 朝鮮映畵人協會 [예술·체육/영화]
1939년 8월 16일에 한일 영화인을 망라하여 창립된 협회. 이 단체는 같은 해 10월에 일봉에 영화법이 실시되자 조만간 한반도도 같아지리라 예상하고 전 영화인을 하나의 단체에 가맹시켜서 지도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1943년 10월 7일 조선총독부 도서과 영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