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 총 2,226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분야 : 역사
유엄 / 柳儼 [역사/조선시대사]
1692(숙종 18)∼? 조선 후기의 문신. 장운 증손, 할아버지는 관, 아버지는 정진, 어머니는 박태정의 딸이다. 1723년(경종 3)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에 정언이 되었다. 영조가 즉위하자 지평으로 등용되어 정언과 지평을 번갈아 하였다. 1728년(영조
유한소 / 兪漢蕭 [역사/조선시대사]
1718년(숙종 44)∼1769년(영조 45).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여인(汝人), 본관은 기계(杞溪)이다. 1740년(영조 16)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시강원설서‧사헌부지평 등을 지냈다. 1749년(영조 25) 승지로 있을 때 사도세자의 일을 보고하지 않
유형석 / 柳瀅錫 [역사/근대사]
1914-1973.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강계 출신. 강계공립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만주로 건너가 1932년 안동현립소학교(安東縣立小學校) 및 봉천초등학교(奉天初等學校) 등에서 수학하였다. 그뒤 항저우(杭州)의 중국항공학교에 입학하려 하였으나 거절당하
육상궁동향친제제문 / 毓祥宮冬享親祭祭文 [역사/조선시대사]
1670년 11월 6일에 출생한 영조의 생모 숙빈최씨에 대한 동향친제(冬享親祭)의 제문. 영조가 직접 지었다. 지은 해는 1762년(영조 38)으로 추정된다. 제문의 내용은 크게 여섯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째, 숙빈최씨가 영조인 자신을 어려서 애지중지 키워주신 은혜
육상궁사중삭시제절사축식 / 毓祥宮四仲朔時祭節祀祝式 [역사/조선시대사]
육상궁에 올리는 두 건의 축식을 담은 책. 하나는 한 해 네 번 지내는 중삭시제(仲朔時祭)의 축식, 다른 하나는 명절을 따라 지내는 절사(節祀)의 축식이다.《영조실록》영조 31년(1755) 6월 19일조에 따르면 육상궁의 중삭시제는 춘분과 하지, 추분, 동짓날에 설행
육상궁석년은사전지 / 毓祥宮昔年恩賜田旨 [역사/조선시대사]
영조가 육상궁의 은사전(恩賜田)에 대해서 쓴 명령서. 지난 해 육상궁에 내린 위전(位田)은 특별히 하사한 것인 바, 여기에 속하지 않는 결수는 육상궁에서 망정(望定)한다는 뜻을 경기감영에 통보하라는 내용이다.
육상궁작헌례제문 / 毓祥宮酌獻禮祭文 [역사/조선시대사]
정조가 육상궁의 두번째 회갑을 맞는 1790년에 작헌례를 시행하면서 지은 제문. 이 제문의 우측 하단에 '庚戌二月二十八日'이라 기재되어 있어 1790년(정조 14) 2월 28일에 지어진 글임을 알 수 있다.《정조실록》에 의하면 이날 정조는 육상궁에 작헌례를 행하고,
육상궁재회수신친행동향제제문 / 毓祥宮再回晬辰親行冬享祭祭文 [역사/조선시대사]
정조가 육상궁의 재회(再回) 생신인 1790년 11월 6일에 동향제(冬享祭)를 시행하면서 지은 제문. 우측 하단에 '庚戌十一月初六日'이라 써 있어 1790년(정조 14) 11월 6일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제문은 《홍재전서》권22에 수록되어 있다.
육상궁춘추분제축식 / 毓祥宮春秋分祭祝式 [역사/조선시대사]
춘분과 추분 때 육상궁 제사의 축식을 쓴 책. 축식은 제사의 진행 중 초헌(初獻)과 아헌(亞獻) 사이에 읽혀진다. 소령원 제사의 진설, 의식의 절차 등은 《소령원지》에 상세하다. 소화(昭和)란 연호를 통해 1926년 이후 일제강점기에 필사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육상묘고유제문초 / 毓祥廟告由祭文草 [역사/조선시대사]
1744년(영조 20) 숙빈묘를 소령묘(昭寧墓)로, 사당을 육상묘(毓祥廟)로 각각 승격하고 지낸 고유제의 축문 초고. 영조는 즉위 20년 후인 1744년 3월 7일, 영의정 이하 신료들에게 사친의 묘호와 묘호를 정하는 일에 대해 의논하여 올리라는 명을 내렸다.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