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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문관전고소 / 文官銓考所 [역사/근대사]
조선 말기 판임문관의 임용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던 관청. 1905년 2월 26일 '문관전고소규제'가 반포되면서 의정부 내에 설치되었다. 관원으로는 위원장 1인, 위원 5인, 서기 약간인을 두었다. 1905년 4월 24일 의정부령으로 '문관전고소규칙' 및 '문관전고소세칙
문묘작헌례친행시 관원별단 / 文廟酌獻禮親行時 官員別單 [정치·법제]
국왕이 문묘와 계성사(啓聖祠)에 작헌례를 친행할 때 참여하는 관원의 구성을 보여주는 명단. 우측 상단에 '장서각인'이 날인되어 있다. 문묘와 계성사를 구분, 전사관과 전작관 등으로 차출되는 임시관 직명과 인원수 등을 기록하였다.
문법 / 文法 [언어/언어/문자]
문장을 구성하는 규칙. 문법을 연구하는 문법론을 문법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학습되는 문법교과와 문법책을 문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문법이란 언어현상에 내재해 있는 일정한 질서를 가리키는 데 국한된다. 문법의 범위를 넓게 잡으면 음운과
문병전 / 文秉栓 [역사/근대사]
1898-1971.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풍암(楓庵) 문위세(文緯世)의 종손으로, 1898년 3월 18일 전라남도 장흥군(長興郡) 유치면(有治面) 늑룡리(勒龍里)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나 남달리 의로움이 강하고 과묵했다. 30여 세 되
문세영 / 文世榮 [언어/언어/문자]
1888(?)∼? 사전편찬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상동에 살았으며, 배재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6·25 때 행방불명되었다고 하나 자세한 생몰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다. 1935년 조선어학회의 표준말 사정위원, 1936년 그 수정위원을 지냈다. 1938년 7월 최
문영박 / 文永樸 [종교·철학/유학]
1880년(고종 17)∼1931년. 독립운동가. 영남의 거유이다. 1919년부터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날 때까지 전국 각지를 내왕하면서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계속해서 송달해주어 임시정부를 크게 고무 진작시켰다. 이에 보답하기 위하여 임시정부에서는 그
문의병장안중근보국수사 / 聞義兵將安重根報國讎事 [문학/한문학]
조선 말기에 김택영(金澤榮)이 지은 한시. 칠언절구. 3수. 그의 문집인 『소호당집(韶濩堂集)』 권4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1909년 안중근이 일본의 이토(伊藤博文)를 하얼빈역에서 사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의 원수를 갚은 쾌거를 기려 읊은 작품이다. 이 시
문일평 / 文一平 [언론·출판]
항일기의 사학자·언론인(1888∼1936). 1911년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하여 안재홍·김성수·장덕수 등과 교유하였다. 1912년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신문사 대공화보에 근무하였다. 1933년《조선일보》의 편집고문이 되어 한국사를 연구하고 그 대중화에 힘을 기울였다.
문정관 / 問情官 [역사/근대사]
이양선의 출현과 외국인의 표류시 그 사정을 조사하기 위하여 임명된 관직. 1781년 표류한 외국인에게 조선의 예의와 풍속을 보이고 효과적인 조처를 취하기 위하여 왕명으로 이양선문정사례를 제정하고 조처하였다. 그 뒤 이양선의 출현과 외국인의 표류시 반드시 문정관이 파견되
문중문고 / 門中文庫 [사회/가족]
문중의 자제교육과 학자들의 독서를 장려할 목적으로 세워진 일종의 사립도서관. 문중문고는 우리나라 유림들의 일제침략과 신학문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로 사회, 정치적인 배경에 기인하여 나타난 순수한 사립도서관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러나 그 설립목적에 따른 장서내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