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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
위원용연동유적 / 渭原龍淵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평안북도 위원군 숭정면 용연동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퇴장 유적(退藏遺蹟). 유적의 위치는 위원읍에서 압록강으로 거슬러 올라가 남쪽으로 10여 리 되는 곳으로, 압록강의 지류인 위원강의 상류 한백천(漢栢川)에 연해 있는 산간벽지에 있다. 발견경위는 1927년 8월 1일
위정척사사상 / 衛正斥邪思想 [역사/근대사]
벽이론(闢異論)에 바탕한 새로운 유교적 정치윤리사상. 위정척사사상은 주자학적 화이의식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 보수성과 배타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리학자인 유림들의 존명배청의식(尊明排淸意識), 이질적 문화를 무조건 비문화(非文化)로 말살하려는 태도는 주자
유관순 / 柳寬順 [역사/근대사]
1902-1920.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16년 이화학당 교비생으로 입학하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등과 1년생으로 맨앞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격렬하게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불굴의 투혼으로 옥중 항쟁을 계속하다 1920년 19세의 나이로 끝내
유극량 / 劉克良 [역사/조선시대사]
?∼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무신. 연안 유씨의 시조이다. 어머니는 재상 홍섬의 노비였다. 어려서부터 고학을 해 무과에 급제하였다. 당시의 신분 제도에서는 과거에 응시할 수 없는 노비 출신이었으나, 홍섬의 깊은 배려로 노비 신분을 면제받았다. 전라좌수사, 조
유길준 / 兪吉濬 [역사/근대사]
1856∼1914. 조선 후기의 개화사상가·정치가. 1881년 어윤중의 수행원으로 신사유람단에 참가,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 됐다. 《한성순보》 발간의 실무를 맡으나 민씨 세력의 견제로 여의치 않자 주사직을 사임한다. 갑신정변 이후 주모자와 친분관계로 가택 연
유동열 / 柳東說 [역사/근대사]
1877-?.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만주로 망명, ‘대한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하였다. 상해임시정부 참모총장 등을 지내고 민족혁명당을 조직하였다. 광복 후 귀국, 초대 통위부장을 지냈다. 6·25 때 납북되었다.
유동하 / 劉東夏 [역사/근대사]
1892-1918. 독립운동가. 이명은 강로(江露). 함경남도 덕원 출신. 1909년 10월 노령 코트지로의 자택에서 아버지와 안중근(安重根)·우덕순(禹德淳)·조도선(曺道先)·김성화·탁공규(卓公奎)와 더불어 구국혁신을 맹세하는 ‘7인동맹’을 조직하였다. 1909년 10
유득공 / 柳得恭 [역사/조선시대사]
1748(영조 24)∼1807(순조 7). 조선 후기의 실학자. 1774년(영조 50) 사마시에 합격해 생원이 되고, 시문에 뛰어난 재질이 인정되어 1779년(정조 3) 규장각검서(奎章閣檢書)로 들어가 활약이 컸다. 그 뒤 제천·포천·양근 등의 군수를 거쳐 말년에는 풍
유림 / 柳林 [역사/근대사]
1894-196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인. 호는 단주(旦洲). 3·1운동 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 의정 의원과 국무위원 등을 지냈다. 광복 후 임시정부 비상국민회의 부의장·독립노동당 당수·대한국민의회 의장 등을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
유명조선국육신묘비명 / 有明朝鮮國六臣墓碑銘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단종에게 충절을 바친 사육신의 묘비명. 노량진의 묘역에는 육신 가운데 5기의 표석이 세워져 있는데 박, 유, 이, 성이라는 성씨로 세워져 있다. 이밖에 성삼문(成三問)의 부친인 성승(成勝)의 묘소가 있다. 하위지(河緯地)의 묘소는 영남 선산(善山)에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