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정훤 / 鄭暄 [종교·철학/유학]
1588년(선조 21)∼1647년(인조 25). 조선 중기 유학자. 부친은 정사서, 모친은 의성김씨이다. 정몽주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겠다는 의미로 지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일찍이 성리학에 뜻을 두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어머니와 함께 가야산에 피신하여 전화를
정희 / 鄭熺 [종교·철학/유학]
1723년(경종 3)∼1793년(정조 17). 조선 후기 문인. 부친은 정상명이다. 최흥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56년(영조 32) 식년시 생원 2등 18위로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고향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의
정희량 / 鄭希亮 [종교·철학/유학]
?∼1728(영조 4). 조선 후기의 역신. 아버지는 중원. 명문의 자손으로 안음에 거주하면서 부귀를 누리다가 순흥으로 이사하였다. 1728년이인좌·박필현 등과 공모하여, 영조 즉위 후 벼슬에서 밀려난 소론일파의 호응을 얻어 밀풍군 탄을 추대, 왕통을 바로 세워야 한다
정희보 / 鄭熙普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683∼1763). 1725년(영조 1)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후에 사헌부집의·병조참지 등을 역임했다. 왕실의 외손이었던 원경하와 관계가 좋지 못해 벼슬길이 순탄치 못했다. 저서로는《퇴성헌유고》가 있다.
정희왕후 / 貞熹王后 [종교·철학/유학]
1418(태종 18)∼1483(성종 14). 조선 제7대 왕 세조의 비. 윤번의 딸이다. 1428년(세종 10)에 가례를 행하였다. 처음에는 낙랑부대부인에 수봉되었다. 1455년(세조 1) 왕비에 책봉되었다. 성종이 즉위할 때의 나이가 13세였으므로 정희왕후가 7년 동
제경욱 / 諸景彧 [종교·철학/유학]
1760년(영조 36)∼1812년(순조 12). 조선 후기의 무신. 말 6세손이다. 무과급제하여 선전관으로 운총만호, 해서우후가 되어 군비를 쇄신할 때 군민의 폐를 끼치지 않았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관서절도영의 청북소모장이 되어 절도사 이
제말 / 諸沫 [종교·철학/유학]
?∼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의병장. 제씨의 시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웅천·김해·정암 등지에서 대승하였다. 곽재우와 함께 조정에 알려져 성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그 뒤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조 때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젬부쉬 / Otto Zembsch [정치·법제/외교]
1841-? 조선 주재 독일 초대 총영사. 1883년 한독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추인서가 1884년 10월 9일 교환되어 양국 간의 외교업무가 시작되자, 같은 해 10월 14일 조선 주재 총영사로 임명되어 조선에 왔다. 11월 28일 정식으로 부임하였다. 1885년
조경 / 趙璥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7∼1789). 1763년(영조 39)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을 거쳐 부제학·대사성을 지낸 뒤 정조가 즉위하면서 공조참판이 되었다. 그 뒤 좌승지·승문원제조·실록청당상관·대사헌을 지내고, 함경도관찰사가 되어 민폐를 없애고 군무
조경 / 趙絅 [종교·철학/유학]
1586(선조 19)∼1669(현종10). 조선 후기의 문신. 수곤 증손, 할아버지는 현, 아버지는 익남이다. 어머니는 유개의 딸이다. 윤근수의 문인이다. 1626년(인조 4) 정시문과에 장원, 정언·교리·헌납, 대제학, 형조판서, 회양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
조경남 / 趙慶男 [문학/고전산문]
조선시대 『난중잡록』, 『속잡록』 등을 저술한 의병장. 전라북도 남원 출생. 아버지는 사직 조벽(趙璧)이며, 어머니는 남원 양씨이다. 삼학사(三學士)의 심양(瀋陽) 순절소식에 충의를 읊기도 하였다. 사후 주포서원(周浦書院)에 향사됐다. 13세 때인 1582년(선조 15
조계원 / 趙啓遠 [종교·철학/유학]
1592(선조 25)∼1670(현종 11). 조선 후기의 문신. 준수 증손, 할아버지는 남, 아버지는 존성, 어머니는 이신충의 딸이다. 신흠의 사위로 숙부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뒤에 이항복의 문인이 되었다. 1628년(인조 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경기감사, 동지
조관빈 / 趙觀彬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1∼1757). 1719년 승지로 특채되고, 1720년(경종 즉위) 대사간·대사성·승지를 거쳐 이듬해 이조참의에 올랐다. 1753년 대제학으로 죽책문의 제진을 거부하여 단천으로 이배되었다. 그해 풀려나와 이후 좌빈객·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철저한
조광국 / 曺光國 [종교·철학/유학]
1691년(숙종 17) ∼1758년(영조 34). 조선 후기 유학자. 증조부는 조진창, 조부는 조효량, 아버지는 조선장이다. 외조부는 곽태재, 처부는 박중영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가 병이 들자 병간호에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이러한 효행으로 판서 김상성의 천거
조광벽 / 趙光璧 [종교·철학/유학]
1566(명종 21)∼1642(인조 20).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수복, 어머니는 이춘억의 딸이다. 유성룡의 문인이다. 1626년(인조 4) 덕행으로 천거되어 경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청암찰방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북계집』 2권이 있다.
조광익 / 曺光益 [종교·철학/유학]
1537(중종 32)∼1580(선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윤신, 어머니는 장말손의 손녀이다. 이황의 문인,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156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1569년(선조 2) 형조좌랑에 이어 감찰을 지내고 1576년 중시에 장원급제
조광조 / 趙光祖 [종교·철학/유학]
1482-1519. 조선 중종 때의 유학자. 김굉필에게서 배웠다. 1515년 성균관에 천거되었고, 1517년 임금의 경전강론을 하였다. 1518년 현량과를 실시했으며, 훈구관료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실천적이 도학적 태도는 향약의 실시와 소격서의 폐지론으로
조광현 / 趙光玹 [종교·철학/유학]
1553년(명종 8)∼미상. 부친은 조사필이다. 형은 조광숙, 동생은 조광위인데, 동생과 함께 율곡 이이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벼슬은 제릉참봉‧금성현령‧충익위에 이어 호조좌랑에 이르렀다. 저서로는『금탄유고』가 있다.
조구명 / 趙龜命 [종교·철학/유학]
1693년(숙종 19)∼1737년(영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 조부는 조상우, 아버지는 조태수이다. 모친은 심권의 딸이다. 1735년(영조 11) 동몽교관이 되었다. 사축서별제, 공조좌랑이 되었다. 1737년(영조 13) 9월 영조가 그에게 외읍에 시험해 보도록
조구석 / 趙龜錫 [종교·철학/유학]
1615(광해군 7)∼1665(현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남 증손, 할아버지는 존성, 아버지는 계원이다. 어머니는 신흠의 딸이다. 정홍명의 문인이다. 1648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 교리, 헌납, 이조좌랑, 전라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장륙당유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