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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정중기 / 鄭重器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1685∼1757). 1727년(영조 3) 생원으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31년 승정원주서가 되고, 이어 결성현감으로 나가 풍속을 바로잡고 《여씨향약》에 의거하여 향속의 순화에 노력하였다. 사간원정언을 거쳐 1753년 사헌부지평이 되
정중대 / 鄭重岱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1∼1762). 1717년 봉상시주부 겸 부정자에 임명되어 숙종에게 동서고금의 역사를 강설, 그 실력을 크게 인정받아 정자에 승진되고, 이어 박사가 되었다. 1718년 금교도찰방으로 나가 자신의 녹봉을 털어 주민들을 진휼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정중록 / 鄭重祿 [종교·철학/유학]
1678년(숙종 4)∼1732년(영조 8). 조선 후기 유생·효자. 증조는 정호례, 조부는 정시상이다. 부친 정석명과 모친 서중후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박기봉의 딸이다. 정규양에게서 학문을 배웠는데, 경서와《사기》공부를 즐겨하였고, 《사자소학》과《가례》를
정지락 / 鄭之洛 [종교·철학/유학]
1773년(영조 49)∼1857년(철종 8).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정내양, 생부는 정내성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8세에 글을 지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18세의 나이로 조부를 따라 과거에도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문집으로 2권의《침천재유고》가 전
정지용 / 鄭知容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83∼?). 생원으로서 1813년(순조 1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여러 차례 청환직을 역임하고, 1828년에는 진전 작헌례 때 대축으로서 통정대부에 올랐다. 이듬해 대사간으로 발탁되었고, 1832년 이조참의를 거쳐 다시 대사간을 지낸
정지집 / 鄭之鏶 [종교·철학/유학]
1693년(숙종 19)∼1754년(영조 30). 조선 후기 유학자. 용포 이유와 청대 권상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강학과 실천을 항상 염두하면서 위기지학에 힘썼다. 문집으로 후손인 정원국과 정건모 등이 편집·간행한 4권 2책의《병촉재문
정진한 / 鄭鎭漢 [종교·철학/유학]
1867년(고종 4)∼1947년. 한말의 의병. 영천의병장 환직의 재종질이다. 1905년 일제에 의하여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계기로 고종의 밀명을 받은 정환직은 아들 용기에게 거의할 것을 명하였다. 정진한은 이때 정용기·이한구·손영각 등과 함께 거의계획을 세우게
정진헌 / 鄭鎭憲 [종교·철학/유학]
1834년(순조 34)∼1911년. 조선 말기 유학자. 조부는 정유곤, 부친은 정관왕, 생부는 정연광이다. 문장이 훌륭하여『훈지양선생어록』의 서문과『만회문집』의 발문을 쓰기도 하였다. 문집으로 8권 4책의『하산문집』이 전하는데 시는「고암잡영」‧「팔경」등의 자연시들과 헌
정찬휘 / 鄭纘輝 [종교·철학/유학]
1652(효종 3)∼1723(경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몽주 11대손이다. 약관으로 송시열의 문하생이 되었는데 스승으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평생을 두고『대학』·『심경』·『근사록』연구에 전념함으로써 당대 독학의 선비로 알려졌다. 군자감판관, 산음현감을 역임하였다.
정천 / 鄭洊 [종교·철학/유학]
1659(효종 10)∼1724(경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철 현손, 아버지는 보연이다. 외숙인 민정중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대표관직으로는 공조정랑, 금천현감을 지냈다.
정철 / 鄭澈 [정치·법제/법제·행정]
1536-1593. 조선 중기 문신 겸 시인. 당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시조의 윤선도와 함께 한국 시가사상 쌍벽으로 일컬어진다. 기대승·김인후·양응정의 문하생. 어려서 인종의 귀인인 맏누이와 계림군 유의 부인이 된 둘째 누이로 인하여 궁중에 출입하였는데 이 때 어린
정충신 / 鄭忠信 [종교·철학/유학]
1576(선조 9)∼1636(인조 14). 조선 중기의 무신. 지 9대손, 아버지는 윤이다. 어머니는 이인조의 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 권율의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부원수, 포도대장, 경상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만운집
정충필 / 鄭忠弼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은사(1725∼1789). 경사와 제자백가에 통하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고, 전초에도 뛰어났다. 저서로 《노우문집》이 있으며, 글씨로는 낙선당 손종로와 충노 억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783년(정조 7)에 세워진 손종로정충비각에 그의 글씨가 전한다.
정취하 / 鄭就河 [종교·철학/유학]
1691∼1759. 조선 후기 문신. 정철 후손, 아버지는 정즙이다. 형은 정진하와 정민하, 아우는 정택하이다. 1738년(영조 14) 무오 식년시 생원 3등 20위로 합격하고 1738년(영조 14) 무오 식년시 진사 3등 14위로 합격하였다. 성균관관장을 역임하였다
정칙 / 鄭侙 [종교·철학/유학]
1601(선조 34)∼1663(현종 4).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사신, 어머니는 이광준의 딸이다. 광해군의 폭정을 비관하여 과거응시를 포기하고 글만을 읽다가, 1627년(인조 5) 진사가 되고 이어서 참봉에 올랐다. 청나라와 강화가 이루어지자 대명절의를 부르짖고
정탁 / 鄭擢 [종교·철학/유학]
1363(공민왕 12)∼1423(세종 5).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아버지는 공권이다. 1382년(우왕 8) 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후 춘추관수찬관·사헌규정·좌정언·호조좌랑·병조좌랑·광흥창사 등을 역임하였다.1392년(태조 1) 이성계의 추대를 제일 먼저 발의한 공
정탁 / 鄭琢 [종교·철학/유학]
1526(중종 21)∼1605(선조38). 조선 중기의 문신. 원로의 증손, 할아버지는 교, 아버지는 이충, 어머니는 한종결의 딸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52년(명종 7) 성균생원시를 거쳐 155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우의정, 좌의정, 영중추부사를 역임
정태래 / 鄭泰來 [종교·철학/유학]
1683년(숙종 9)∼1721년(경종 1).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정지서, 생부는 정지일이다. 유일상과 이고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수차례 과거에 낙방한 뒤 벼슬에 뜻을 잃고 은거하였다. 이재장·안일이·권협소 등과 도의로써 교유하였다. 유고로《송설헌유고》가
정태복 / 鄭泰復 [종교·철학/유학]
1888년(고종 25) 10월 1일~1960년 1월 18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1917년 9월 광복회원이 되었다. 중국 상해에서 가져온 문건을 이재덕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200여 매를 등사, 문건을 서울과 경상도 전역, 그리고 충청남도 지방에 거주하는 부호들에
정태봉 / 鄭太鳳 [역사/근대사]
1893년(고종 30)∼1942년.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화순 출신이다.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자금모집 요청서를 받아 국내에서 군자금모집에 종사하였다. 김두환(金斗煥) 등 10여명과 연합하여 경상도 일대의 부호명단을 작성하고 금품을 모집 하였고,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