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정인홍 / 鄭仁弘 [종교·철학/유학]
1535(중종 30)∼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학자·의병장·정치가. 희 증손, 할아버지는 언우, 아버지는 건. 조식의 수제자로서 최영경·오건·김우옹·곽재우 등과 함께 경상우도의 남명학파를 대표하였다. 1573년(선조 6) 학행으로 천거되어 6품직에 오르고, 1
정인회 / 鄭寅會 [종교·철학/대종교]
1893년(고종 30)∼1985년. 대종교 최고지도자 중의 한 사람. 1950년 교의회의 의결에 따라 교주계승방식을 전임교주의 권한에 의한 도통전수제에서 교의회의 공선으로 바꾸고 교주의 명칭을 도사교에서 총전교로 개정한 이후, 1955년 9월 제2대총전교에 취임한 것
정일당강씨 / 靜一堂姜氏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정일당유고』를 저술한 문인. 충청북도 제천출신. 아버지는 강재수(姜在洙)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권서응(權瑞應)의 딸이다. 윤광연(尹光演)의 부인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20세에 출가한 뒤 집이 가난하여 바느질로 생
정일영 / 鄭日永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59∼?). 1887년(고종 2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부수찬·규장각직각·교리 등을 거쳐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고, 1891년 식년감시(式年監試)의 시관이 되었다. 1900년 강원도관찰사에 제수되었지만 실정으로 말미암아 면직되고
정일전 / 鄭一銓 [종교·철학/유학]
1714년(숙종 40)∼1796년(정조 20).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정중주, 형 정일옥이 있다. 이형상과 정중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53년(영조 29) 식년시 생원 2등 17위로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었다. 정희·정충필 등과 학문적인 교유를 나누었
정작 / 鄭碏 [종교·철학/유학]
1533(중종 28)∼1603(선조36).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순붕이다. 아버지가 이기·윤원형 등에게 아부하여 세인으로부터 원흉의 한 사람으로 지목,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윤임·유관·유인숙 등을 죽인 뒤 유관의 재산을 몰수 그 가족을 노비로 삼았다. 의술에 뛰어
정재로 / 丁載老 [종교·철학/유학]
1731∼1802(영조 7∼영조 7). 고조는 시옥, 증조는 도명, 조부는 희신, 부친은 지익이다. 어머니는 홍덕상의 딸이다. 생부는 지겸, 생모는 김홍렬의 딸이다. 1731년(영조 7) 4월 1일에 태어났고, 지익의 뒤를 이었다. 1756년(영조 32) 진사시에 합
정재원 / 丁載遠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0∼1792). 어려서부터 문학에만 힘쓰고 재물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일찍이 광주의 세과에 부방하였는데, 당시 광주유수 이종성으로부터 글의 뛰어남과 뜻의 원대함을 인정받았다. 제술이 영조에게 인정을 받고 곧바로 이조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
정재화 / 鄭在和 [종교·철학/유학]
1754년(영조 30)~1790년(정조 14). 조선 후기 부마. 정철의 후손, 증조는 정구하, 조부는 정유, 부친은 정인환이다. 부인은 청선군주이다. 1766년(영조 42년) 청선군주와 결혼하면서 흥은부위의 칭호를 받았으나, 사헌부지평 홍상성이 정재화가 사람들을 풀
정제 / 鄭梯 [종교·철학/유학]
1689년(숙종 15)∼1765년(영조 41).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정사제이다. 정만양과 정규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향시에는 여러 차례 합격하였으나 대과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오직 학문 정진에 전념하였다. 학문적으로 교유한 인물로 정중기·정간 등이 있다.
정제두 / 鄭齊斗 [종교·철학]
1649-1736.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활동에 전념하였다. 당시 이단시하던 양명학을 고집하여 조선 양명학의 태두가 되었다. 그는 심즉리설에 입각하여 주자학의 성즉리설을 비판했다. 저서로는 <하곡집>이 있다.
정조 / 正祖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제22대 왕(1752∼1800). 재위 1777∼1800년. 1759년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 요절한 효장세자의 후사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1776년 즉위하자 곧 규장각을 설치하여 이로써 인재를 양성하고 문화정치를 추진하는 가운데 정권
정존겸 / 鄭存謙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2∼1794). 1750년(영조 26) 생원시에 합격, 다음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제학을 역임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 시파로서 우의정에 발탁되고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다. 1781년《영조실록》과 《경종수정실록》 편찬의 실록청총재관을
정존중 / 鄭存中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1∼1798). 1754년(영조 30)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음사로서 참봉이 되었다가 누천하여 1780년(정조 4) 광주목사로서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중용되었다. 1791년 한성부판윤에 이어 개성부유수를 거쳐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
정종 / 鄭悰 [종교·철학/유학]
?∼1461(세조 7). 조선 전기의 문신. 아버지는 충경이다. 1450년(세종 32)에 문종의 딸 경혜공주와 혼인한 뒤 영양위에 봉하여지고, 단종 초기에 형조판서가 되어 단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정종로 / 鄭宗魯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1738∼1816). 이상정의 문하에서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고, 주리론적인 입장에서 성리학의 연구와 저술에 전념했다. “경학과 문장이 융성하여 영남 제1의 인물.” 이라는 채제공의 평으로 의금부도사에 특진되었고, 사포서별제·강령현감·함창현감에
정종명 / 鄭宗溟 [종교·철학/유학]
1565(명종 20)∼1626(인조 4). 조선 중기의 문신. 위 증손, 할아버지는 유침, 아버지는 철이다. 어머니는 유강정의 딸이다. 형조참의 홍인걸의 사위이다. 이이·성혼의 문인이다. 저작으로 『송강유고』의 부록에 실려 있는『백씨유고』가 있다.
정종명 / 鄭鍾鳴 [정치·법제/정치]
1895년(고종 32)∼미상. 여류 독립운동가·간호원. 전라남도 목포 출신. 1922년 4월 1일 동지 여자고학생상조회를 서울에서 조직, 1925년 5월에 박원희·김필애 등 20여명과 조선여성동우회를 서울에서 조직 운영하기 시작, 이들이 곧 뒷날 근우회를 조직하고 항일
정종호 / 鄭宗鎬 [종교·철학/유학]
1875년(고종 12)∼1954년. 일제 강점기 유학자. 부친 정재설과 모친 재령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노상익의 딸이다. 중부 정재기, 결혼 후에는 노상익·노상직에게 학문을 배웠다. 파리장서 사건 때 본문을 칠곡군에 있는 장석영으로부터 받아서 대구의 윤상태에
정준 / 鄭儁 [종교·철학/유학]
1573년(선조 6) ~1644년(인조 22) 조선 중기 문신. 정몽주 8세손, 부친은 정응선이다. 희릉참봉과 건원릉참봉을 거쳐서 1623년(인조 1) 6월에 사재감직장을 지냈고, 1625년(인조 3) 7월에 예빈시주부를 지냈으며, 이후 돈령부판관‧종친부전부를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