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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권구 / 權耈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9∼1847). 생부는 권상희이며 권상현의 양자가 되었다. 예학에 조예가 깊어서 관혼상제의 규례를 엄격히 했다. 특히 상제에 밝아서《상감잡록》,《상중답록》을 저술했다.
권구현 / 權九玄 [예술·체육/회화]
1898-1944. 시인·미술가. 충청북도 영동 출신. 본명은 구현(龜鉉). 아호(雅號)는 흑성(黑星). 이밖에도 천마산인이란 필명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는 고향의 영동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과정을 마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구체적인 것은 알려
권규 / 權珪 [종교·철학/유학]
1648(인조 26)∼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권협의 증손, 할아버지는 권근중, 아버지는 영의정 권대운, 어머니는 우정의 딸이다. 1675년(숙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검열이 되었다. 사헌부·사간원의 관직과 이조낭관 등의 관직을 두루
권극중 / 權克仲 [종교·철학/유학]
1585-1659 조선 성종때의 성리학자·도교학자. 13세부터 김장생의 문인인 최명룡에게 수학하였다. 1606년 김장생의 문하에 들어갔으나, 신병으로 즉시 귀향하였다. 1612년 진사가 되었으나 정국의 혼란에 자극되어 은거하였다. 유교, 불교, 도교를 일관하는 사상을
권근 / 權近 [종교·철학/유학]
1352-1409. 여말선초의 유학자. 이색의 문인이다. 고려말 조선 초에 대제학, 대사성들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고려 말에 친명정책을 주장하여 원나라 사신의 입국을 반대하였다. 조선의 태종 즉위 후 사병의 폐지를 주장하는 등 왕권확립에 기여하였다. 왕명으로 《동국사
권기옥 / 權基玉 [역사/근대사]
1903-1988. 독립운동가. 평양 출신. 독립운동가 이상정(李相定)의 부인이다. 1919년 평양 숭의학교(崇義學校) 재학시 3·1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붙잡혀 3주일 동안 구류되었다. 그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락원인 임득삼(林得三)·김정직(金鼎稷)·김순일(金淳一)
권기일 / 權奇鎰 [역사/근대사]
1886-1920.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 본명은 혁린(赫麟). 경상북도 안동 출신. 1912년 만주 봉천성(奉天省)으로 망명하여 이시영(李始榮)·김좌진(金佐鎭) 등 항일지도자들과 접촉하면서 독립군 양성을 위해 학교를 설립하였다. 1919년 3월 부민단(扶民團)·
권대운 / 權大運 [종교·철학/유학]
1612(광해군 4)∼1699(숙종 25). 조선 후기의 문신. 지중추부사 권상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권협, 아버지는 사어 권근중, 어머니는 이유혼의 딸이다. 1649년에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정언이 되었다. 이후 호조판서, 형조판서, 예조판서, 병조판서,
권대재 / 權大載 [종교·철학/유학]
1620(광해군 12)∼1689(숙종 15). 조선 후기의 문신. 지중추부사 권상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권협, 아버지는 진사 권의중, 어머니는 신종사의 딸이다. 1653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선발되었다. 1658년(효종 9)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
권덕규 / 權悳奎 [언어/언어·문자]
항일기의 국어학자(1890-1950). 호는 애류(崖溜).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창립에 참여하였고 조선어학회의 《조선어큰사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원안을 작성하였다. 저서로는 《조선어문경위 朝鮮語文經緯, 《조선유기 朝鮮留記》 ,《을지문덕 乙支
권덕수 / 權德秀 [종교·철학/유학]
1672년(현종 13)∼1759년(영조 35).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진원, 어머니는 김종발의 딸이다. 열여섯 살에 권두인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향중에 격문을 돌려 의병을 일으켰고, 관찰사 박문수에게 타일러 무사하
권도용 / 權道溶 [역사/근대사]
1878-1959. 일제 강점기 유학자·독립운동가·교육자. 자는 호중(浩中)이고, 호는 추범(秋帆)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출신지는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이다. 부친 권재모(權在模)와 모친 진양하씨(晉陽河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곽종석(郭鍾錫
권돈인 / 權敦仁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인·서화가(1783∼1859). 동지사의 서장관과 진하 겸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조판서와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철종의 증조인 진종의 조천례에 관한 주청으로 인해 순흥으로 유배되었다. 서화에 능하였다.
권동진 / 權東鎭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61-1947). 호는 애당(愛堂)·우당(憂堂)·실암(實菴). 거문도첨사 재직시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아 일본으로 망명했다. 일본에서 사귄 손병의의 영향으로 천도교에 입교해 민족대표로 3.1운동을 이끌었다. 《개벽》의 편집에 참여
권두경 / 權斗經 [종교·철학/유학]
1654(효종 5)∼1725(영조 1).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충정공 권벌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권석충, 아버지는 권유, 어머니는 예안김씨이며, 처는 김시온의 딸이다. 이현일의 문인으로 이재 등과 교유하였다. 1679년(숙종 5)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권두굉 / 權斗紘 [종교·철학/유학]
1668년(현종 9)∼1717년(숙종 43).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권래, 조부는 권석충, 부친 권유와 모친 김견의 딸사이에서 5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 창설공 권두경·권두위·권두기가 있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조계윤의 딸 풍양조씨, 둘째
권두기 / 權斗紀 [종교·철학/유학]
1659(효종 10)∼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좌찬성 권벌 5대손, 할아버지는 권석충, 아버지는 권유, 어머니는 김감의 딸이다. 1696년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1701년 예조좌랑을 지낸 뒤 잠시 사직하고 귀향하였다가 다시
권두문 / 權斗文 [종교·철학/유학]
1543(중종 38)∼1617(광해군 9). 조선 중기의 문신. 권성손의 증손, 할아버지는 권담, 아버지는 장악원주부 권유년, 어머니는 상원, 권극제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이름이 높았다. 1572년(선조 5)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교서관에 임명된 뒤
권두인 / 權斗寅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43∼1719). 1678년(숙종 4) 증광 진사시에 3등 22위로 합격하였다. 기사환국 이후 영남의 선비 가운데 학문과 행실이 뛰어난 자 약간 명을 천거했는데, 수위를 차지하여 효릉참봉에 제수되었다. 다시 문학과 행검으로 추천되었고, 품계를
권득기 / 權得己 [종교·철학/유학]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권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종묘서령 권덕유이고, 아버지는 예조판서 권극례이며, 어머니는 윤천석의 딸이다. 큰아버지인 선공감역 권극관에게 입양되었다. 1589년(선조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