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전이성 / 全以性 [종교·철학/유학]
1578년(선조 11)∼1646년(인조 24). 전위 아들이다. 1606년(선조 39) 병오년 식년시 병과 9위로 문과에 등제하여 제조랑을 지냈다. 두 번이나 번막을 보좌하였으며, 다섯 번 군현에 나아가 읍장이 되었다. 그의 시문집《운계집》 4권 2책이 있다. 1907
전익구 / 全翼耈 [종교·철학/유학]
1615(광해군 7) - 1684(숙종 10). 아버지는 이성은, 어머니는 황윤규의 딸이다. 전익구는 처외조부인 우복 정경세의 문인으로, 일찍부터 학문에 전념하여 명리를 멀리하였다. 노수신과 정경세를 위하여 봉산서원을 짓기도하였다. 평생 상주의 산림에 은거하여 관직에
전익희 / 全益禧 [종교·철학/유학]
1598(선조 31)∼1659(효종 10). 조선 후기의 문신. 희철의 5세손, 할아버지는 개, 아버지는 뇌, 어머니는 정척의 현손녀이다. 정경세의 문인이다. 1624년(인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조정랑, 강진현감, 사헌부지평, 사간원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전태일 / 全泰壹 [사회/사회구조]
1970년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 자살한 서울 평화시장 재단사ㆍ노동운동가. 전태일은 1948년 8월 26일 경북 대구시에서 장남으로 태어났고, 1954년 가족이 모두 서울로 이주하여 남대문국민학교를 다녔다. 1963년 대구에서 살다가 다시 1964년 상경하여
전형필 / 全鎣弼 [교육]
1906년∼1962년. 문화재 수집가. 본관은 정선. 서울 출생. 1926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9년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귀국, 문화재수집에 힘썼다. 1940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인수, 교장직을 맡았다. 1954년 문화재 보존위원, 1956년 교
전호연 / 全浩然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극동프로모션을 설립하여 프로모터로 활동한 체육인. 황해도 출신.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나자와(金澤)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에 누이가 있어 본적지를 강경으로 바꾸었다. 복싱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59년이
정간 / 鄭幹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2∼1757). 1725년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했다. 경연관으로 재직 중《춘추》를 진강하여 말 1필을 하사받았다. 동래부사로 재직 중 선정을 베풀어서, 왜인들이 나무로 세운 청덕비가 있다.
정개청 / 鄭介淸 [종교·철학/유학]
1529(중종 24)∼1590(선조 23).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세웅, 어머니는 나씨이다. 북부참봉, 전생서주부, 곡성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589년에 정여립의 모역사건 때 이의 처리과정상 연루자로 체포되어 함경도 경원 아산보로 유배되어 7월 그 곳에
정건조 / 鄭健朝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23∼?). 1823년 증광 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규장각직각·병조정랑·대사성·이조참의를 지냈고, 사은 겸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이후 형조판서·예조판서·이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정경세 / 鄭經世 [정치·법제/법제·행정]
1563년(명종 18)∼1633년(인조 11).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좌찬성여관(汝寬)이며, 어머니는 합천 이씨(陜川李氏)로 가(軻)의 딸이다.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이다. 대표관직으로는 홍문관교리에 경연시독관·춘추관기주관을 겸하였고
정경옥 / 鄭景玉 [종교·철학/개신교]
1903년∼1945년. 감리교 목사·조직신학자. 전라남도 진도 출신. 1927년 감리교신학교 졸업 후 미국 개렛신학교에서 수학. 1929년 다시 노스웨스턴대학원에 입학, 문학석사학위를 받고, 1931년부터 1937년까지 감리교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193
정계순 / 鄭啓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9∼1789). 1765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헌릉참봉·중부직장·의금부도사·선공봉사 등을 역임했다. 1777년 증광시 갑과에 급제하여 풍천부사·공조참의·승정원승지·사간원 등을 거쳤다. 1785년에는 대사간이 되었다.
정괄 / 鄭佸 [종교·철학/유학]
1435(세종 17)∼1495(연산군 1). 조선 초기의 문신. 정부 증손, 할아버지는 정흠지, 아버지는 정창손, 어머니는 정지의 딸이다. 1465년 식년 문과에 정과로 급제, 병조판서, 대사헌, 이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연산군이 즉위한 뒤 1495년(연산
정광경 / 鄭廣敬 [종교·철학/유학]
1586(선조 19)∼1644(인조 22). 조선 후기의 문신. 복겸 증손, 할아버지는 유길, 아버지는 창연, 어머니는 한세건의 딸이다. 판서 광성의 아우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그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상의원정, 사인, 응교
정광묵 / 鄭光黙 [종교·철학/유학]
1777~1825(정조1~순조25). 아버지는 형국, 어머니는 순천김씨, 부인은 풍양조씨이다. 난 지 여덟 달만에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의 엄격한 훈육을 받으며 자랐다. 1814년 문과에 급제하여, 학유에 보임되어 가주서기주가 되었고, 이어 전적에 배명되어 봉상시주부가
정광성 / 鄭廣成 [종교·철학/유학]
1576(선조 9)∼1654(효종 5). 조선 중·후기의 문신. 복겸 증손, 할아버지는 유길, 아버지는 창연, 어머니는 한세건의 딸이다. 참판 광경의 형이고, 영의정 태화의 아버지이다. 1603년(선조 3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수찬, 교리, 지평, 지돈녕부사
정광적 / 鄭光績 [종교·철학/유학]
1551(명종 6)∼? 조선 중기의 문신. 승근 증손, 할아버지는 기문, 아버지는 희적, 어머니는 홍정의 딸이다. 1579년(선조 1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83년 병조좌랑으로 있을 때 무과초시의 합격자 명단 일부를 삭제한 죄로 북방의 군역에 편입되었다.
정광필 / 鄭光弼 [종교·철학/유학]
1462(세조 8)∼1538(중종 33). 조선 전기의 문신. 구령 증손, 할아버지는 사, 아버지는 난종, 어머니는 이지지의 딸이다. 1492년(성종 23) 진사에 오르고, 그 해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그 뒤 성균관학유·의정부사록·봉상시직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좌
정교 / 鄭僑 [종교·철학/유학]
1764∼1834(영조40∼순조34). 고조는 정요, 증조는 정지종, 조는 정태건이다.정교의 아버지 정형상은 원래 정연의 현손 정태복의 아들로서, 정요봉의 아들 정태건의 후사를 이었으며, 정요봉의 아들 정지집이 그의 본생고조부가 된다. 어머니는 풍양조씨,1764년 상주
정구 / 鄭矩 [종교·철학/유학]
1350(충정왕 2)∼1418(태종18).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아버지는 양생이다. 1377년(우왕 3) 문과에 을과 2등으로 급제, 전교시부령, 의정부찬성, 호조판서, 개성부유후 등을 역임하였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건원릉신도비의 제액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