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제도 총 2,13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제도
양로원 / 養老院 [사회/사회구조]
의지할 곳이 없는 노인들을 수용, 보호하는 노인복지시설. 오늘과 같은 양로원의 출현은 1900년대 이후의 일이지만 양로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삼국시대 이래로 환과고독(鰥寡孤獨:홀아비·과부·자식 없는 늙은이·고아)을 사궁(四窮)이라 하여 사회정책적으로 보호하였다. 그러나
양역이정청 / 良役釐整廳 [정치·법제/법제·행정]
1703년 양역 쇄신을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임진왜란 이후 양인 장정들은 대부분 군포를 바치는 납포군으로 바뀌게 되었다. 숙종초부터 양역변통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마침내 1703년 9월에 이를 전담하는 기구로 양역이정청을 설치하였다. 이후 1750년(영
양원 / 良媛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세자궁의 종3품 내관. 조선 초기 세종 때의 동궁내관제도에 의하면 양원은 세자의 후궁 중 양제 다음의 등급인 정3품이었으나, ≪경국대전≫에 의하면 세자의 후궁 중 두번째 서열로 종3품의 품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내명부 내관으로서 품
양전 / 量田 [경제·산업/경제]
조세 부과를 목적으로 한 전지의 넓이를 측량. 양전의 방식은 조세법과 함께 변천하였다. 조선초기 양전법은 세종 26년(1444)에 공법이란 이름아래 전분육등·연분구등의 정액세법으로 변경. 전지의 등급이 여섯으로 세분되는 한편, 척의 길이도 종래 농부의 수지에 의거하던
양지아문 / 量地衙門 [역사/근대사]
구한말 전국의 토지를 측량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서. 1898년 탁지부 내에 설치되었다. 1901년 전국적인 흉년으로 양전사업이 중단되었고 양지아문은 1902년 지계아문에 통합되었다. 관원으로 총재 3인, 부총재관 2인, 기사원 3인, 서기 6인 등이 있었다.
양향청 / 糧餉廳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 훈련도감 소속의 재정 관서. 1593년(선조 26) 훈련도감의 발족과 함께 설치되었다. 훈련도감에서 소용되는 의복·무기·비품 등의 물품을 조달하고, 급료 등의 재정을 관리, 운영하였다. 관제로는 도제조 1원, 제조 3인, 낭청(종사관) 1인의 관원을 두었다
양현고 / 養賢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식량·물품 공급을 담당한 기관. 1392년(태조 1) 양현고에 2인의 판관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가 태종 때에 판관제도를 폐지하고 사·승·녹사 각 1인씩을 두어 관리하도록 하였다. 영조 때 편찬된 ≪속대전≫에 따르면 대폭 줄여 학전 400결로
어공원 / 御供院 [역사/근대사]
구한말 왕실의 토지개간, 종식, 천택, 강해 및 국왕에게 진상하는 사무 등을 관리하던 관청. 1904년 궁내부에 설치되었고, 경, 서무과장 각 1명, 위원 2명, 주사 3명 등을 두었다. 그러나 즉시 폐지되었다.
어모장군 / 禦侮將軍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무신 정3품 당하관의 품계.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무산계 하계는 과의장군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무산계 하계의 과의장군은 1466년(세조 12) 어모장군으로 개칭되어 ≪경국대전≫에 그대로 수록되었다. 그리고 정3품 당하관에 해당되는
어물전 / 魚物廛 [경제·산업/경제]
조선시대 육주비전 가운데 수산물을 취급하던 시전. 북어·관목(貫目 : 말린 청어)·꼴뚜기·민어·석어(石魚 : 조기)·통대구(通大口)·광어·문어·가오리·전복·해삼·가자미·곤포(昆布)·미역·김·파래·우뭇가사리 등 각종 수산물을 취급하던 상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