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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장진홍 / 張鎭弘 [역사/근대사]

    1895-1930. 독립운동가. 일명 성욱(聖旭). 경상북도 칠곡 출신. 1912년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에 입대, 상등병으로 근무하다가 1914년 제대한 뒤 비밀항일결사인 광복단(光復團)에 입단하였다. 1918년 이국필(李國弼)과 같이 하바로스크로 가서 그곳 교포청년

  • 장추화 / 張秋華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대한예술무용협회, 청년무용집단, 현대무용가집단 등에서 활동한 무용가.현대무용가. 1936년 일본 도쿄에 있는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찾아가서 춤에 입문하였다. 해주 여고를 졸업하고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떠나서 최승희 문하가 되었다. 장추화는 최승희

  • 장취오 / 張聚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84∼1770). 조부는 장효민, 부친은 장시서이다. 1756년(영조 32) 병자 정시 병과 3위에 급제하였다. 영조의 사랑을 받아 왕으로부터 어제인 《자성편》·《식경편》그리고 어제어필인《대보단갱첩》을 하사받았는데, 8대손인 장기덕에 의해 보존되

  • 장판개 / 張判介 [예술·체육/국악]

    1885-1937년. 조선 고종 때부터 일제 초기까지 활약한 판소리 명창 중의 한 사람. 호는 학순(鶴舜). 전라북도 순창 출생.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풍류나 판소리에 능하였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소리를 배웠다. 천성적으로 재질이 있고 목소리가 좋아서 집안사람

  • 장패륜 / 張佩綸 [정치·법제/외교]

    1848-1903. 청말 청류파 관리. 임오군란 이후 조선지배 강경파. 이홍장의 사위. 1871년 한림원편수가 되었다. 1875년 한림원시강으로 발탁되었고, 1876년 기거주관으로 활약하였다. 장패륜을 포함하는 청류파는 러시이와 타협한 숭후를 격렬하게 비판하여 숭후 실

  • 장학량 / 張學良 [정치·법제/정치]

    1898-?. 중국의 군벌. 장작림의 아들. 장개석의 국민정부와 손잡고 만주일대에서 항일운동에 나섰다. 1936년 12월 시찰 온 장개석을 감금하고 <내전정지, 일치항일>을 요구한 서안사건을 일으켜 제2차 국공합자의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군법회의에서 모든 공직을 박

  • 장한성 / 張寒星 [역사/근대사]

    1891-193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국민대표대회에 고려혁명군사령부 대표로 참석하였다. 국민부와 조선혁명당을 조직하자 특립대장이 되어 동만지구총책임자로 활동하였다. 공산당원이라는 혐의로 중국 공안국에 체포, 옥사하였다.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 장한철 / 張漢喆 [문학/고전산문]

    조선후기 대정현감, 흡곡현령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장차방(張次房)의 아들이다. 입신양명에 뜻을 두고 웅혼(雄渾)한 마음을 기르고자 그의 나이 25세인 1768년(영조 44)에 남제주의 산방산(山房山)을 오르고, 이듬해에는 한라산을 정복하였다. 177

  • 장해평 / 莊海平 [역사/근대사]

    1905-1965. 독립운동가. 일명 기준(麒俊). 가명은 남용무(南容武)·이계백(李啓白). 황해도 안악 출신. 운동(雲洞)의 아들이다. 1922년에 정주 오산중학교(五山中學校)를 3년 수료한 뒤 이듬해 조선일보 안악지국을 경영하다가 동향인 김구(金九)·오면직(吳冕稙

  • 장헌문 / 蔣憲文 [역사/근대사]

    1870-1926. 한말의 의병장. 자는 무장(武章), 호는 뇌헌(磊軒). 경상북도 영일 출신. 1895년(고종 32)의 민비시해(閔妃弑害)와 단발령(斷髮令)을 계기로 을미의병이 전국적으로 봉기하자, 1896년 영일에서 1차거의, 항일투쟁을 개시하였다. 그뒤 일제가 1

  • 장현광 / 張顯光 [종교·철학/유학]

    1554-1637. 조선 중기의 유학자. 정구를 종유하였으나 뚜렷한 사승관계는 없었다. 여러 차례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여헌집>, 편저에는 <역학도설> 등이 있다.

  • 장현근 / 張鉉謹 [역사/근대사]

    1909-미상. 항일기 의 독립운동가. 1909년 9월 19일 음성읍(陰城邑) 신천리(新泉里)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전라북도 정읍시 토리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항일정신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전력하였다. 1929년 9월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항일 독립운동

  • 장형 / 張炯 [역사/근대사]

    1889-196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교육자. 호는 범정(梵亭). 평안북도 용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다. 1910년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군자금 조달에 공을 세웠다. 1946년 국민동지회 회장이 되었고, 1947년 단국대학

  • 장호강 / 張虎崗 [역사/근대사]

    1916-200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이다. 중국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제24집단 군사령부와 제29군사령부의 정보장교를 역임하였다. 광복군에 입대하여 제3지대 본부의 부관실에서 근무하였고, 제3지대가를 작사·작곡하여 보급하였다.

  • 장혼 / 張混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이이자초』, 『동사촬요』 등을 저술한 문인. 증조부 장필한(張弼漢)은 유명한 위항시인(委巷詩人)으로 『소대풍요(昭代風謠)』에 시가 실렸다. 아버지는 문음(門蔭)으로 통례원(通禮院) 우통례(右通禮)를 지낸 장우벽(張友璧)이다. 아들 장창(張昶)과 장욱(張旭),

  • 장홍심 / 張紅心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동양무용연구소장, 장홍심고전무용교습소장으로 활동한 무용가.한국전통무용가. 1914년 함흥시 성천동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월순이다. 1925년 12세 때 함흥권번에 입적하여, 정남희(1905~1984)에게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익혔다. 춤은 당시 권번 소속 춤

  • 장효근 / 張孝根 [종교·철학/천도교]

    1867-1946년. 독립운동가·천도교인. 1898년 8월 이종일·유영석 등과 함께《제국신문》의 창간, 보급에 참여하였으며, 1906년 6월에는 오세창·이인직·권동진 등과 같이 천도교의 기관지인 《만세보》를 창간, 민족혼을 일깨웠다. 그뒤 1909년 6월에는《대한협회

  • 장흥 / 張興 [역사/근대사]

    1903-1983. 독립운동가·군인·헌병 영장(營長). 일명 기진(基鎭). 경기도 고양 출신. 중국 상해(上海)·난징(南京)·쑤저우(蘇州) 등지에서 항일투쟁하였다. 1925년 2월 의열단원 오세덕(吳世德)의 권유로 상해 프랑스 조계내에 있던 한국청년동맹회에 가입, 항

  • 장흥효 / 張興孝 [종교·철학/유학]

    1564(명종 19)∼1633(인조 11). 조선 중기의 학자. 팽수의 아들, 어머니는 안동권씨이다. 김성일·유성룡을 사사, 뒤에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문하에 이휘일 등 학자가 있다. 1633년에 창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교지가 도착되기 전에 죽었다. 저서에『경당

  • 장희영 / 張喜榮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대한체육회 감사를 역임한 체육인. 서울 출신. 학창시절부터 운동을 즐겨 했으며, 1962년 한국체육관 역도부 사범으로 체육계에 입문하였다. 1965년 개인 도장 마포역도관을 열어 관장 겸 사범으로 많은 역사(力士)와 보디빌더(body builder)를 길러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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