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강찬 / 姜𧄽 [종교·철학/유학]
1849년(헌종 15)∼미상. 조선 고종 때의 문신. 세황 5세손, 기 손자, 준수의 아들이다. 1871년(고종 8) 정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71년 홍문관부교리와 수찬을 거쳐 1872년에는 규장각직각이 되었다. 1883년 이후에는 예조참의·이조참의, 우
강창보 / 姜昌輔 [역사/근대사]
1902-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제주(濟州: 현 제주특별자치도 소속)이다. 1920년대 초 서울의 청년학관에서 사회과학에 대한 공부를 마친 후, 1924년 고향 제주에서 조직한 사상단체 신인회(新人會)의 교육부 간사를 지내면
강창제 / 姜昌濟 [역사/근대사]
1898-1965.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 호는 창산(蒼山). 평안북도 창성 출신. 아버지는 시홍(時洪)이다.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뒤 상해로 망명하여 1922년에 독립신문사(獨立新聞社)기자로 활약하였고, 1924년에는 임
강철구 / 姜銕求 [역사/근대사]
1894-1943.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부여 출생. 1917년 대종교신도로 만주에 건너가 동간도의 천영학교(天英學校) 교사가 되어 제2세 민족교육에 정열을 쏟았다. 1920년 1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총재 서일(徐一)과 뜻을 같이하여 북로군정서에 가입하여 총재비서
강철규 / 姜徹奎 [역사/근대사]
1873-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중국 길림성(吉林省) 혼춘현(琿春縣)의 한민회(韓民會)에 가담하였다. 박면하(朴冕河)·이창민(李昌敏)·임종영(林鍾英)·정정협(鄭正協
강철호 / 姜哲鎬 [역사/근대사]
1860-1947년.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호는 농은(農隱)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제주도 대정(大靜)에서 태어났다. 제주 대정상무사(大靜商務社)의 중심인물중 한 사람으로 채구석(蔡龜錫)·송희수(宋希洙) 등과 함께 학문에 몰두하였다. 1910년(융희 4)에
강태동 / 姜泰東 [역사/근대사]
1889-1946. 독립운동가. 일명 석룡(錫龍). 함경남도 이원 출생. 1911년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김구(金九) 등과 같이 붙잡혀 황해도 해주형무소에서 복역한 바 있으며, 향리에서 3·1운동을 주동하여 고문을 받은 바 있다. 이어 그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가
강태수 [문학/현대문학]
소련에서 활동한 고려인 시인·작가. 20여 년동안의 유배 생활과 가택 연금 생활을 당하면서도, 200여 편의 시, 단편, 수필 등을 한글로 써서 발표한 소련의 대표적인 고려인 시인이자 작가이다. 1908년 8월 26일에 함경북도 이원군에서 출생하였고, 1927년에 소련
강태홍 / 姜太弘 [예술·체육/국악]
1897-1957. 가야금산조의 명인. 호는 효산(曉山). 전라남도 무안 출신. 원각사에서 창극활동을 하던 명창 용안(龍安)의 셋째 아들이다. 아홉살 때부터 가야금을 배웠으며, 가야금산조의 창시자로 알려진 김창조(金昌祖)에게서 전수받았다. 거주지를 대구로 옮겨 살면서
강필효 / 姜必孝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764∼1848).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1800년부터 제자를 모아 학문을 가르쳤다. 1803년 유일로 천거되어 순릉 참봉, 1814년 세자익위사세마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1842년 조지서별제를 거쳐 충청도도사를 역임하였으며, 돈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