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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몽가 / 吉夢歌 [문학/고전시가]
1759년(영조 35)한석지(韓錫地)가 지은 가사. 작자의 문집 『온고록 溫故錄』(일명 明善錄) 끝에 실려 있다. 작자가 51세 때 운림(雲林) 중덕산(中德山)에서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국한문혼용으로 되어 있으며 4음보 1행으로 헤아려 총 140구이다. 이 작품은 몽
김민순 / 金敏淳 [문학/고전시가]
조선 순조 때의 시인.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7대손이다. 관직은 현감을 지냈다고 되어 있고, 『가곡원류』 가와이본(河合本)에는 익종 대리시(代理時) 지평현감(砥平縣監)을 지냈다고 되어 있다. 김민순의 작품은 15수가 전하고 있다. 『청구영언』 육당본에만 수록된
김삼현 / 金三賢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 시조 작가 주의식(朱義植)의 사위이다. 정3품 절충장군(折衝將軍)의 벼슬을 지냈다. 시조 6수가 『청구영언』·『해동가요』·『가곡원류』 등에 전한다. 『청구영언』 홍씨본(洪氏本)에는 ‘한산인(閑散人)’으로, 『대동풍아(大東風雅)』에는 ‘숙종조명
김수장 / 金壽長 [문학/고전시가]
1690(숙종 16)∼? 조선 후기의 가인. 김천택과 더불어 숙종·영조 시대를 대표하는 쌍벽의 가인이다. 그가 1769년(영조 45)까지도 자신이 편찬한 가집의 보수작업을 한 것으로 보아 80세가 넘도록 생존하였음이 분명하다.
김우규 / 金友奎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가객(歌客). 『청구가요(靑邱歌謠)』의 김우규 작품 후서에서 김수장(金壽長)은 김우규가 자기보다 한 해 뒤인 신미년(1691)에 태어났으며(聖伯年令辛未我庚午), 당시에 그가 생존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此輩已沒 只有聖伯與我矣). 김수장이 이 글을 쓴 해가
김유기 / 金裕器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 김천택(金天澤)이 그를 일러 “세상에 명창으로 이름이 알려졌다.”고 말한 바와 같이 당대를 대표하는 창곡의 명인이다. 자세한 전기는 알 수 없으며 기록들을 통해 추측할 뿐이다. 박영돈본(朴永弴本) 『해동가요』의 부록으로 실려 있는 『영언선(永
김응정 / 金應鼎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의 문인. 아버지는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김한걸(金漢傑)이며, 어머니는 해남 윤씨(海南尹氏)이다. 그는 명종의 비인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죽었을 때, 또 명종·선조가 죽었을 때에 고령에도 불구하고 상복을 입고 상사(喪事)에 임하였다. 당시 그는 비록 관직은 없
김인겸 / 金仁謙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문인. 김상헌(金尙憲)의 현손,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郎) 김창복(金昌復),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 장서주(張瑞周)의 딸이다. 문벌이 혁혁(赫赫)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그의 할아버지인 수능(壽能)은 서출이라 과거에 급제하고도 현감에 그쳤다. 14세 때에
김진태 / 金振泰 [문학/고전시가]
조선 숙종·영조 때의 가인(歌人). 이형상(李衡祥)의 가집인 『악학습령(樂學拾零)』의 작가 목록에 신분이 서리(胥吏)로 밝혀져 있다. 1766년(영조 42)에 증보한 『해동가요』의 부록인 『청구가요(靑丘歌謠)』에 김수장(金壽長)이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김진형 / 金鎭衡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김종수(金宗壽)이다. 1850년(철종 1)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853년(철종 4)홍문관교리로 있을 때 이조판서서기순(徐箕淳)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수찬남종순(南鍾順)에게 몰려 한때 명천(明川)으로 유배되었다. 1856년(철종 7)문과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