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임봉주 / 林鳳柱 [역사/근대사]
1875-1921년. 독립운동가. 일명 세규(世圭). 경상북도 영주 출신. 1915년 풍기의 광복단과 대구의 조선국권회복단을 통합하여 조직된 대한광복회에 가담하였다. 1916년 권상석(權相錫)·우재룡(禹在龍) 등과 함께 친일 부호 장승원(張承遠)을 처단하려다 실패하고,
임성구 / 林聖九 [예술·체육/연극]
1887-1921년. 신파극(新派劇)초창기의 연극인. 서울 출생. 어려서 서당에 다녔을 뿐,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20세 때에 일본공사관이 있던 남산의 종현성당(鐘峴聖堂)뒷문 근처에 살면서 때마침 그곳의 일본인 극장에서 공연되던 신파극이나 가부키(歌
임성남 / 林聖男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국립무용단 초대단장, 국립발레단 단장 등을 역임한 무용가.안무가, 발레교육자.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하여 4학년 때 전주 도립극장에서 있었던 한동인(韓東人) 발레단의 공연을 보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1947년 4월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한동인 발레단의 공연
임성우 / 林成雨 [역사/근대사]
1889-197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서울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미국 하와이이다. 1914년 6월 하와이에서 박용만(朴容萬)이 창설한 국민군단(國民軍團) 훈련대소대 참위로 활동하였다. 1925년 4월 하와이에서 조직된 조미구락부(朝美俱樂部)에 오운
임성원 / 林聲遠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우원집』을 저술한 시인. 숙종연간에 여항시인(閭巷詩人)으로 활동하였던 녹사중부주부(錄事中部主簿) 임춘양(林春養)의 증손이다. 중인출신으로 관직을 가지지 못하였으며, 집이 가난하여 실컷 먹고 취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였으나 생업에는 힘쓰지 않고 시인으로 자오하
임성주 / 任聖周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711∼1788). 이재의 문인이다. 1750년 세자익위사세마가 되고 시직에 승진하였으나 곧 사직하고, 1758년 공주의 녹문에 은거하였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한 뒤 동궁을 보도하고 지방관을 지내다가 다시 녹문에 은거하여 학문연구로 여생을 보냈
임성칠 / 林成七 [역사/근대사]
1901-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거주지는 중국 만주(滿洲)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이다. 중국 연길현에 있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조사를 받던 도중에 탈출을 시도하여 성공하였으나, 연길현 모루구(母樓溝)에
임수간 / 任守幹 [종교·철학/유학]
1665(현종 6)∼1721(경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선백 증손, 할아버지는 중, 아버지는 상원, 어머니는 정식의 딸이다. 1694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리, 정언, 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돈와유집』이 있다.
임수명 / 任壽命 [역사/근대사]
1894-1924년. 여성독립운동가. 충청북도 진천 출신. 1912년 서울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할 때 일본경찰에 쫓겨 환자로 가장하여 입원하고 있던 신팔균(申八均)과 1914년 결혼하였다. 그뒤 신팔균과 함께 만주에서 비밀문서의 전달, 군자금의 모금, 독립군후원 등에 힘
임수명 / 林守明 [역사/근대사]
1897-197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임경(林鏡)·임작주(林作柱)이다. 본적은 전라북도 정읍(井邑)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전라남도 여수(麗水)이다. 조부는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崔益鉉)의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임병찬(林炳瓚)이고, 부친
임숙영 / 任叔英 [종교·철학/유학]
1576(선조 9)∼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열의 증손, 할아버지는 숭로, 아버지는 기, 어머니는 정유일의 딸이다. 승문원정자, 박사를 거쳐 주서, 예문관검열과, 부수찬, 지평을 역임하였다. 그가 지은「통군정서」는 중국학자들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았다고
임승복 / 林勝福 [예술·체육/연극]
1912-미상. 일제 강점기 극작가. 필명은 임선규(林仙圭)이고, 개명한 이름은 임중랑(林中郞)이다. 본적은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관동리(官洞里)이다. 부인은 여배우 문예봉(文藝峰)이다. 1927년부터 1931년까지 공립강경상업학교 3학년을 수료한 뒤, 1931
임영 / 林泳 [정치·법제/법제·행정]
1649(인조 27)∼1696(숙종 22).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군수 일유, 어머니는 임천조씨로 석형의 딸이다. 이단상ㆍ박세채의 문인이다. 1665년(현종 6) 사마시에 장원하였고, 1671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호당에 뽑혔다. 대표적인 관직으로는 대사
임영신 / 任永信 [정치·법제/정치]
현대의 여성 지도자·정치가(1899∼1977).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의 연통제에 관여하였다. 이후 1948년 상공부장관, 1950년 민의원, 1953년 중앙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고, 저서로 《My Forty Years Fight For Korea》가 있다.
임예환 / 林禮煥 [역사/근대사]
1865-194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연암(淵菴).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였고, 1919년 3월 1일 손병희·오세창 등과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한 뒤 검거되었다. 출옥 후에도 계속 항일운동을 하였다.
임용련 / 任用璉 [예술·체육/영화]
1901-미상. 양화가. 일명 임파(任波).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재학중 3·1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가 중국으로 탈출, 한때 난징(南京)의 금릉대학(金陵大學)에 다녔다. 1922년 중국인을 가장한 ‘임파’라는 이름의 중국여권으로 미국에 건너가
임용상 / 林龍相 [역사/근대사]
1877-1958. 항일기의 의병장. 자는 충서(忠瑞). 호는 중호(中虎).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조직하여 동해창의대장으로 청하·영덕 등지의 주재소를 습격했고, 1909년 울산·언양·양산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이후 보현산에서 산남의진
임유정 / 林惟正 [문학/한문학]
고려시대 녹사, 국자감좨주 등을 역임한 관리.문신. 생몰연대가 자세하지 않다. 그가 남긴 시제 등을 참고하면, 1140년대에 태어나 1190년대까지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는 무신집권기의 전반기인 명종 초에 과거에 급제하고 명종 말까지 생존하였던 것으로 생각된
임의백 / 任義伯 [종교·철학/유학]
1605(선조 38)∼1667(현종 8). 조선 중기의 문신. 열 증손, 할아버지는 영로, 아버지는 연, 어머니는 정유성의 딸이다. 김장생의 문인, 송시열·송준길 등과 교유하였다. 1655년 승지·황해도관찰사를 거쳐, 1657년 경상도관찰사, 1659년(현종 즉위년)
임의탁 / 林義鐸 [역사/근대사]
1891-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동환(東煥)·창식(昌植). 평양 출신. 1911년 일제요인을 사살할 목적으로 경술결사대(庚戌決死隊)를 조직하고 그 대장이 되어 상경, 1912년 일제 경무부의 일본인 경부(警部) 니시카와(西川)를 사살한 뒤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