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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인현왕후 / 仁顯王后 [역사/조선시대사]
1667(현종 8)∼1701(숙종 27). 조선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 아버지는 민유중, 어머니는 송준길의 딸이다. 1681년(숙종 7) 가례를 올리고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예의가 바르고 덕성이 높아 국모로서 만백성의 추앙을 받았으나, 왕자를 낳지 못하여 왕의 총
일연 / 一然 [종교·철학/불교]
1206-1289. 고려시대의 승려. 14세 설악산 진전사에서 출가하였다. 22세에 승과에 급제하였다. 32세에 삼중대사가 되었다. 41세에 선사가 되고, 54세에 대선사가 되었다. 56세에 선월사 주지가 되었고, 59세에 오어사에서 불경을 강론하였다. 63세에 고승들
임경주 / 任敬周 [종교·철학/유학]
1718년(숙종 44)∼1745년(영조 21). 조선 후기 유생. 증조는 임승, 조부는 임사원이다. 부친 임적과 모친 윤부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으로 녹문 임성주가 있다. 부인은 김응복의 딸이다. 18세에는 당시의 문사 황경원·이인상·이보행과 벗 원경여 등이 아끼
임계영 / 任啓英 [종교·철학/유학]
1528(중종 23)∼1597(선조 30). 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아버지는 희중이다. 1576년(선조 9)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진보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전 현감 박광전, 능성현령 김익복, 진사 문위세 등과 보성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전라우도 의병장
임광재 / 任光載 [종교·철학/유학]
?∼1495(연산군 1). 조선 전기의 부마. 할아버지는 원준, 아버지는 사홍이다. 예종의 딸인 현숙공주의 남편으로 1475년(성종 6) 숭덕대부 의빈부의빈이 되었으며, 1485년 숭덕대부 풍천위, 1492년 풍천위가 되었다. 유배 도중 병이 나 강릉 우계현으로 유배지
임국정 / 林國楨 [역사/근대사]
1894-1921.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19년 3·1운동 뒤 간도에서 한상호·최봉설 등과 함께 철혈광복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북로군정서 특파원으로 간도일본영사관에 송금되는 돈을 탈취하여 무기를 구입·공급하다가 밀고로 체포되어 사형되었다.
임규 / 任奎 [종교·철학/유학]
1620(광해군 12)∼1687(숙종 13). 조선 후기의 문신. 영로 증손, 할아버지는 연, 아버지는 준백, 어머니는 이발의 딸이다.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 1670년(현종 1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정언·장령·집의·수찬·경주부윤 등
임규 / 林圭 [역사/근대사]
1867-1948.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우정(偶丁). 1895년(고종 32) 일본에 가서 게이오의숙 중학교 특별과를 거쳐 동 전수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의 여러 사립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다. 최남선으로부터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통고문과 선언서를 받아 일본
임기준 / 林基俊 [예술·체육/국악]
1868-1940년. 가사와 시조의 명창. 서울 출신. 1939년 6월부터 9월까지 이왕직아악부 임시촉탁으로 부임하여 이름난 가인(歌人) 하규일(河圭一)이 부르지 않던 12가사 중 〈수양산가 首陽山歌〉·〈처사가 處士歌〉·〈양양가 襄陽歌〉·〈매화타령〉의 네 곡과 사설지름
임대년 / 任大年 [종교·철학/유학]
?∼1695 조선후기 문신. 임백영 현손이다. 집안의 의장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도와주었으며, 흉년이 든 해에는 자기의 전토를 팔아서 이웃과 마을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 숫자가 수천 명이었다고 한다. 상신 이단하가 인재로 조정에 아뢰어 경양찰방을
임득연 / 林得淵 [역사/근대사]
1896-195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安東) 임하(臨河)이다.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유북실(柳北實)·임춘섭(林春燮)·임범섭(林範燮)·임찬일(林燦逸)·김원진(金源鎭)·임동숙(林東淑)·임윤익(林潤益)·박유석(朴有石
임방 / 任埅 [종교·철학/유학]
1640(인조 18)∼1724(경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영로 증손, 할아버지는 연, 아버지는 의백, 어머니는 김상의 딸이다. 송시열과 송준길의 문인이다. 1701년(숙종 27)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장령·승지·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논어취분』·『사가할영』·『
임백경 / 任百經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00∼1864). 임조용 증손, 할아버지는 임희직, 아버지는 임존상, 어머니는 남속의 딸이다. 1827년(순조 27)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이후 형조판서·비변사당상 등을 역임했다. 1856년(철종 7)에는 동지사로 청나라를 다녀오기도 했다. 저서로
임백윤 / 任白允 [역사/근대사]
1880-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광주(廣州) 도척(都尺)이다. 1907년(융희 1) 7월 24일 일제에 의해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이 체결되자 이에 격분하여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의병 봉기가 일어났는데, 같은 해 8월 의병을 일으켰던 임옥여(任玉
임벽당김씨 / 林碧堂金氏 [문학/한문학]
조선전기 『임벽당집』을 저술한 시인. 본관은 의성(義城). 별좌(別座) 김수천(金壽千)의 딸이며, 기묘사화 때 고향인 한산(韓山)으로 돌아가 은거한 유여주(兪汝舟)의 계실이다. 시집으로 『임벽당집』이 규장각과 일본인 다카하시[高橋亨]에게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
임병국 / 任秉國 [역사/근대사]
1882-1957. 한말의 의병장. 이명은 민호(珉鎬). 전라남도 보성 출신. 서민출신의 의병장이 출현한 후기 의병운동의 중심지였던 보성에서 안규홍의진에 참가하여 좌우익부장(左右翼副將)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2월 이후 파청대첩(巴靑大捷)·진산대첩(眞山大捷)·원봉산
임병극 / 林炳極 [역사/근대사]
188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도이다. 1917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9년 북간도 대한국민회 군사령부 제2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지나혁명단을 조직하고 병기류 구입에 힘썼다. 1921년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피복과장을
임병주 / 林炳周 [종교·철학/유학]
1872-1943년.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경량(卿亮)이고, 호는 경재(敬齋)이다. 본관은 평택(平澤)이다. 아버지는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 임노련(林魯連)이고,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 노석윤(盧錫允)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7세에 글을 읽기 시작하였
임병직 / 林炳稷 [역사/근대사]
1893-1976.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소죽(小竹). 충청남도 부여 출생. 1913년 이승만(李承晩)의 알선으로 미국 오하이오 디킨스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재학중 《한국학생평론》을 창간하고 그 편집장이 되어 일제의 한국 강점을 폭로하면서 세계자유 우방에게 독립지원을
임병찬 / 林炳瓚 [정치·법제/국방]
조선 후기의 의병(1851∼1916). 독립의군부를 전국 조직으로 확대하여 대한독립의군부로 만들었다. 전국적인 의병운동을 계획하였다. 일제에 의하여 체포되어 거문도로 유배되어 병사하였다. 저서로는 《돈헌문집》이 있다.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