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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
선희궁동지제친행의 / 宣禧宮冬至祭親行儀 [역사/조선시대사]
선희궁(宣禧宮)에서 임금이 동지제(冬至祭)를 친히 집전(執典)할 때의 절차를 기록한 책. 동지제가 있기 하루 전날 선희궁을 청소하는 일로부터 국왕을 비롯한 참예자의 자리를 정하고 제구와 제물의 자리를 마련하는 등 의식을 준비하는 절차와 국왕을 대차(大次)로부터 모셔와
선희궁우루처수개고유제문 및 환안제문 / 宣禧宮雨漏處修改告由祭文 및 還安祭文 [역사/조선시대사]
선희궁(宣禧宮)의 비가 새는 곳을 개수하는 일에 쓰인 두 건의 제문을 기록한 문서. 하나는 개수 사실을 영빈의 혼령에 알리기 위한 고유제(告由祭)에 쓰인 제문, 또 하나는 개수하기 위해 신주(神主)를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가 개수가 끝난 뒤 되모셔올 때 치른 환안제(還
선희궁중삭대제홀기 / 宣禧宮仲朔大祭笏記 [역사/조선시대사]
홀기. 선희궁(宣禧宮)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이씨(暎嬪李氏)를 모신 사당이다. 왕비가 아닌 후궁으로서 왕을 생산한 경우 종묘에 모실 수 없었기 때문에 따로 사당을 지어 모셨다. 영빈이씨의 시호를 따서 의열묘(義烈廟)라 하다가 1788년(정조 12)에
선희궁중삭준축책 / 宣禧宮仲朔準祝冊 [역사/조선시대사]
고종 광무연간에 선희궁(宣禧宮)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된 축문 형식을 규정한 글을 모은 책. 이 책에는 중삭제(仲朔祭)와 속절제(俗節祭)에 썼던 축문 2가지가 있다. 중삭은 음력 2·5·8·11월을 가리키는데, 중삭제는 중춘(仲春)과 중추(仲秋)인 2월과 8월의 상
선희궁춘추분제축식 / 宣禧宮春秋分祭祝式 [역사/조선시대사]
선희궁(宣禧宮)에서 춘분과 추분에 제향을 지낼 때 쓰이는 축문의 형식을 규정한 책. 축식은 제사하는 날을 맞이하여 술과 제수를 올리니 흠향하시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사를 올리는 해의 자리에 일본의 연호 "소화(昭和)"를 쓴 것으로 보아, 이 축식은 1926년
성동사관학교 / 城東士官學校 [역사/근대사]
1925년 북만주에서 설립된 독립군 간부양성기관. 1925년 대한군정서와 대한독립군단을 중심으로 신민부가 결성되었는데, 신민부가 5개대대의 독자적인 독립군을 편성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독립군 양성을 목적으로 목릉현 소추풍에 이 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학교는 연 2
성이호 / 成彛鎬 [역사/조선시대사]
1817년(순조 17)∼1895년(고종 32). 조선 말기의 문신. 자는 돈오(惇五), 본관은 창녕(昌寧), 시호는 정헌(貞憲)이다. 1852년(철종 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72년에는 사은부사(謝恩副使)로, 1883년에는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
성주민란 / 星州民亂 [역사/근대사]
1862년 3월 26일과 4월 12일 두 차례에 걸쳐 경상도 성주에서 일어난 농민운동. 농민군은 1차봉기 때는 수만 명이 읍내에 난입하여 관리의 가옥을 파괴한 것이 32호, 재산을 분탕한 것이 30여 호에 이르렀으며, 2차봉기 때는 읍외의 명암장터에 모여 지탄받던 민가
세골장 / 洗骨葬 [역사/선사시대사]
시신을 한 곳에 안치, 보존해 일정기간이 지나 살이 썩으면 뼈만 추려서 항아리나 돌방〔石室〕에 다시 안치하는 장례법. 이차장(二次葬)·이중장제(二重葬制)의 일종이다. 중국 남부 지방이나 대만, 일본의 오키나와, 우리나라 남해안 일부 지방에서 현재까지 행해지고 있는 것으
세관감시서 / 稅關監視署 [역사/근대사]
구한말 밀무역을 감시 및 취체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세관행정관서. 두만강 및 압록강 연안과 남해안 및 동해안 등에서 러시아, 청, 일본 상인 사이의 밀무역이 성행하였다. 이에 정부가 중요한 지점에 세관감시서를 설치 세관사를 파견하였다. 1906년 일본으로부터 광제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