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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이휘령 / 李彙寧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88∼1861). 이황의 10대손이다. 1816년(순조 16) 진사시에 합격하여 1821년 동몽교관에 임명되고, 이후 의금부도사·청주목사 등을 역임했다. 〈십도집설〉과 〈방경무도사〉를 지었으며, 저서로《고계집》이 있다.
이휘일 / 李徽逸 [종교·철학/유학]
1619(광해군 11)∼1672(현종 13). 조선 후기의 학자. 시명 아들, 시성에게 입양, 어머니는 장흥효의 딸이다. 현일의 형이 된다. 일찍부터 정주의 성리학을 궁구하여 이회하지 못한 바가 없었으나, 병자호란을 겪고 나서는 성리학 공부를 중단하고 손자와 오자의 병
이휘재 / 李彙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95∼1875). 경산현령으로 있으면서 문회재를 창건하여 문풍을 진작시켰다. 안성군수와 청풍부사를 지냈다. 병인양요 때 임금의 부름을 받고 나가 많은 공을 세웠다. 호조참의·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운산문집》이 있다.
이흘 / 李忔 [종교·철학/유학]
1568(선조 1)∼1630(인조 8). 조선 중기의 문신. 은신 증손, 할아버지는 흥, 아버지는 천일, 어머니는 홍염의 딸이다. 1591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공조정랑, 배천군수, 장단부사, 종부시정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관주일록』·『오계문집』이 있다.
이흥민 / 李興敏 [종교·철학/유학]
1809~1881. 조선 말기의 문신. 1864년(고종 1) 대사헌, 그해 7월 동의금부사를 지냈다. 1865년 홍문관제학,예문관제학, 사은 겸 동지정사(謝恩兼冬至正使)로 임명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67년 함경도관찰사에 제수되어 1870년 7월까지 재임하였다.1
이흥수 / 李興秀 [종교·철학/대종교]
1896년(고종 33)∼1973년. 대종교의 중진. 20세 때 노령블라디보스토크의 동양학원에서 수학하였다. 그뒤 국내에서 경성고무주식회사·고려금속주식회사 등을 설립하여 공업과 산업계의 중진으로 크게 활약, 1946년 6월 재단법인 홍익학원의 재단이사장에 취임하여 홍익
이희겸 / 李喜謙 [문학/구비문학]
조선후기 양덕현감을 역임한 문신. 그의 본관에 대해 홍직필(洪直弼)은 청양(靑陽)이라 하였으나 『국조방목』에는 함평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 아마도 후자가 맞을 듯하다. 일생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진사로서 1739년(영조 15) 알성갑과에 급제하였으며
이희경 / 李熙絅 [종교·철학/유학]
1804년(순조 4)∼1866년(고종 3). 조선 후기의 무신. 이윤성 손자, 이경식의 아들이다. 선전관에 취임한 뒤 1826년(순조 26)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뒤 어영대장·총융사·금위대장 등을 역임하였다. 1851년 좌변포도대장이, 금위대장, 공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이희발 / 李羲發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8∼1849). 정동필의 문인, 1795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규장각의 초계문신으로 발탁, 그 뒤 승진하여 순조 때 대사간을 지내고 헌종 초기에는 승지가 되었다. 병조참판·지중추부사를 거쳐 기로소에 들어갔다가, 1849년에는 형조판서가
이희승 / 李熙昇 [언어/언어/문자]
국어국문학자. 1903년부터 5년간 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였고, 1908년이정옥(李貞玉)과 혼인한 다음 곧 상경하여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영어부에 입학하였으나, 1910년 경술국치로 이 학교가 폐교되어 3년만에 졸업하였다. 이어 1911년 9월까지 경성고등보통학교에서 수
이희조 / 李喜朝 [종교·철학/유학]
1655(효종 6)∼1724(경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단상 아들, 송시열의 문인이다. 1680년(숙종 6) 경신환국이 있은 뒤 유일로 천거되어 건원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다시 천거되어 전설별검에 임명, 이어서 의금부도사·공조좌랑을 지내고 진천현감이 되어 선
이희준 / 李羲準 [문학/구비문학]
조선후기 형조판서, 예조판서,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문인. 형인 이희평(李羲平)의 호가 잘못 전하여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이산중(李山重), 아버지는 예조참판 이태영(李泰永)이다. 뒤에 친척 이현영(李顯永)에게 입양됐다. 1805년(순조 5) 증
이희평 / 李羲平 [문학/구비문학]
조선후기 전주판관, 황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할아버지는 군자감정 이산중(李山重)이고, 아버지는 예조참판이태영(李泰永)이며, 이도영(李道永)에게 입양됐다. 집안은 노론으로 혜경궁홍씨의 외척이다. 부인 풍산 홍씨는 효행으로 이름이 높아 정려된 바 있다. 1810년(순조
익종 / 翼宗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세자(1809∼1830). 순조의 세자이다. 1827년 순조의 명령으로 대리청정을 하면서 인재를 등용하고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하고자 했지만 대리청정을 한지 4년 만에 죽었다. 아들 헌종이 즉위한 후 왕으로 추존되었다.
인빈 / 印份 [문학/한문학]
고려전기 한림학사, 문하시사 등을 역임한 관리.문신. 예종·인종 연간에 활동한 문인으로 인종 때 급제하여 한림학사·문하시사(門下侍史)를 지냈다. 작품은 『동문선』에 시 3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5언율시 「비오는 밤에 회포가 일어(雨夜有懷)」 「동도회고(東都懷古)」 「징현
인선왕후 / 仁宣王后 [정치·법제/법제·행정]
1618(광해군 10)∼1674(현종 15). 조선 제17대 왕 효종의 비. 본관은 덕수(德水). 우의정 장유(張維)의 딸이며, 어머니는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딸이다.
인성군 / 仁城君 [종교·철학/유학]
1588(선조 21)∼1628(인조 6). 조선 중기의 왕자. 선조의 일곱째 아들, 어머니는 정빈 민씨이다. 12세에 인성군으로 책봉, 사옹원과 종부시의 도제조와 종친부의 유사를 겸직하였다. 1628년 유효립 등이 대북파의 잔당을 규합하여 모반을 기도할 때에 왕으로 추
인원왕후 / 仁元王后 [역사/조선시대사]
조선 후기의 계비(1687∼1757). 김남중의 3대손, 주신의 딸이다. 숙종의 계비이다.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 민씨가 죽자, 간택되어 궁중에 들어가 다음해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자식은 없고, 사후에 정의장목으로 시호가 올려졌다.
인조 / 仁祖 [역사/조선시대사]
1595(선조 28)∼1649(인조 27). 조선 제16대 왕. 선조의 손자, 정원군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구사맹의 딸인 인헌왕후이다. 비는 한준겸의 딸인 인열왕후이다. 계비는 영돈녕부사 조창원의 딸인 장렬왕후이다. 1607년(선조 40) 능양도정에 봉해졌다. 이어
인평대군 / 麟枰大君 [역사/조선시대사]
1622(광해군 14)∼1658(효종 9). 조선 후기의 왕족. 인조의 셋째아들, 효종의 동생, 1628년 7세 때 인평대군에 봉해졌다. 1640년 볼모로 심양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온 이후, 1650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사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송계집』·『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