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총 2,11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강재천 / 姜在天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송석(松石). 1907년 한국군이 강제로 해산되자,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웠으나 전라남도 장성에서 패전한 후 산중에 은거하였다. 만주로 망명한 후에 대종교에 입교하여 참교·지교를 역임하였으며, 북로군정서에 가입하여 항일무장투쟁에
강제하 / 康濟河 [역사/근대사]
1891-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북도 창성(昌城)이다. 1919년 4월 1일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신용철(申容澈)·강이달(姜利達)·선우명(鮮于明)·선우황(鮮于晃)·문창수(文昌洙)·한선학(韓善學) 등과 함께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대한독립청년단
강제희 / 姜濟羲 [역사/근대사]
1891-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창성 출신.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잡힌 일이 있으며, 그뒤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이동녕(李東寧)·안창호(安昌浩) 등과 연결되어 연통제(聯通制)의 국내책임을 맡아 국내
강진 / 康晋 [역사/근대사]
1912-1976.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평안북도 창성(昌城)이다. 1920년 중국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1926년 정의부중집위(正義府中執委) 김활우(金活右)의 추천으로 흥경현립중학교(興京縣立中學校)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재학 중 양세봉(梁世奉)의 첩보
강진건 / 姜鎭乾 [역사/근대사]
1885-196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이다. 1909년(융희 3) 고향에 협성학교(協成學校) 분교를 설립하였다. 1910년(융희 4) 3월 만주(滿洲)로 망명을 떠나 토지개척사업과 민족교육운동에 힘썼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
강진김해김씨가상여 / 康津金海金氏家喪輿 [사회/가족]
1920년대 제작된 상여로 광주광역시 민속자료 제4호. 강진읍 서성리에 사는 김현장 집안에서 3대째 사용하던 것을 1971년에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 기증, 1920년에 제작하여 1923년에 완성시켰다. 이 상여는 전통적인 상여와는 달리 2층 목조기와집 형태로 되어 있는
강진원 / 姜振遠 [역사/근대사]
1881-1921. 의병장. 본관은 진주. 일명 진원(震遠). 자는 형원(亨遠), 호는 성산(聖山). 전라남도 승주 출신. 유년시절에 손오병서(孫吳兵書) 등을 탐독하면서 한문을 수학했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봉기한 의병진에 가담하였으나 전공을 세울만
강진해 / 姜鎭海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96-1933). 1919년 만주로 망명, 독립단체 정의부의 서란총관으로 활동했다. 1933년 한국독립군 별동대장으로서 동녕현(東寧縣) 진공작전에 참가, 일본군과 격전 끝에 전사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강진희 / 姜璡熙 [예술·체육/회화]
1851-1919. 서화가. 본관은 진주. 호는 청운(菁雲). 1886년 일본공사접응관차(日本公使接應官差)를 거쳐, 1887년 주미공사수원(駐美公使隨員)으로 미국에 다녀온 뒤 법부주사(法部主事)를 지내고, 1905년에는 학부위원(學部委員)을 역임하였다. 1911년에 설
강창보 / 姜昌輔 [역사/근대사]
1902-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제주(濟州: 현 제주특별자치도 소속)이다. 1920년대 초 서울의 청년학관에서 사회과학에 대한 공부를 마친 후, 1924년 고향 제주에서 조직한 사상단체 신인회(新人會)의 교육부 간사를 지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