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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광평대군 / 廣平大君 [역사/조선시대사]
1425(세종 7)∼1444(세종 26). 조선 전기의 왕자. 아버지는 세종,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이다. 1432년(세종 14)광평대군으로 봉해지고 1436년에 신자수의 딸과 혼인하였다. 그 해 성균관에 입학하여 학문에 힘써 『효경』·『소학』·사서삼경·『좌전』등에 능
광한루기 / 廣寒樓記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수산(水山)이 지은 『춘항전』 이본. 1책(62장). 한문필사본. 수산(水山)은 필명이며, 본명은 미상이다. ‘수산광한루기’라고도 한다. 필사연도는 미상이다. 동명의 필사본으로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을 비롯하여 몇 종류가 있고, 활자본으로는 남원군청에서 간
광한루악부108첩 / 廣寒樓樂府百八疊 [문학/한문학]
1852년(철종 3)윤달선(尹達善)이 「춘향가」를 한문으로 번안한 악부시. 「광한루악부백팔쳡」 발문(跋文)에 나온 창작동기는 신위(申緯)의 「관극시(觀劇詩)」 몇백 수가 근세의 절창이다. 이런 시가 적은 것이 한스러워서 이 시를 「향랑가(香娘歌)」에 따라 소곡(小曲)
광한전백옥루상량문 / 廣寒殿白玉樓上樑文 [문학/한문학]
1570년(선조 3)허초희(許楚姬)가 지은 상량문. 목판본. 『난설헌집(蘭雪軒集)』에 전하는 유일의 산문이다. 허초희가 8세에 지었다. 8세밖에 안된 아이가 상량문을 지었고 명문이라는 소문이 퍼져서 여러 사람들이 이 글을 보기를 요청하였다. 허초희의 아우 허균(許筠)이
광해군내외 및 상궁옷 / 光海君內外─尙宮─ [생활/의생활]
조선 후기 광해군과 그의 비·상궁이 입었던 의복. 1965년해인사 팔만대장경판고(八萬大藏經板庫)를 재중수(再重修)하던 중 남각(南角, 수다라장) 중앙 중도리 받침 아래쪽에 길이 130㎝, 너비 9㎝, 깊이 7.5㎝ 크기로 파인 공간 속에서 복식 4점과 상량문 및 상궁의
광해군비당의 / 光海君妃唐衣 [생활/의생활]
광해군비(光海君妃) 유씨(柳氏)의 초록 봉화문단(鳳花紋緞) 홑당의. 이 유물의 겉깃 안쪽에 ‘丙子生王妃柳氏願命衣’라는 묵서(墨書)가 있는데 병자생 왕비 유씨란 광해군의 부인 유씨(柳氏, 1576∼1623)를 말하므로 이 묵서에 근거하여 광해군비의 당의로 명명된 것이다.
광해군일기 / 光海君日記 [역사/조선시대사]
조선후기 제15대 왕 광해군의 재위 기간 동안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룬 실록. 1608년 2월부터 1623년 3월까지 광해군 재위 15년 2개월 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사실을 다루었다. 187권.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유일하게 중초본(中草本, 太白山本) 64책과
광화문 / 光化門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경복궁의 남문. 경복궁 건립 당시에는 정문이라 하였다. 이 문의 건립은 태묘(太廟)와 경복궁이 준공된 1395년(태조 4) 9월에 이루어졌다.
광효록 / 廣孝錄 [교육/교육]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효도의 중요성 등 후세의 자제들이 준수해야 할 실천덕목을 모아 1789년에 간행한 주석서. 1책. 필사본. 효(孝)·제(悌)·제가(齊家)·목(睦)·제의(祭儀)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유교사회의 도덕률 중 가장 소중하게 준수되어오던 효도에
광휘대부 / 廣徽大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정4품 하계 종친계의 위호. 종친계는 1443년(세종 25) 12월 일반 문산계로부터 독립하여 제정되었다. 왕자군의 중증손(衆曾孫)들에게 처음 수여되는 위계였다. 조선 후기는 종친들에게도 일반 문산계를 적용하게 되어 이 위계는 사용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