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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육효자전 / 六孝子傳 [문학/고전산문]
박건회(朴健會)가 편술한 고전소설집. 회동서관(滙東書館)에서 간행하였다. 초두에 ‘박건희 편술’이라 밝혔으며, 전래의 6편 효행담을 엮은 일종의 단편소설집이다. 장회(章回) 소설처럼 횟수로 하여 6편을 엮고 있다. 제1회는 김효증(金孝曾)의 효행담이다. 제2회는 이해룡
윤기현 / 尹冀鉉 [예술·체육/체육]
일제강점기 조선체육회 초대이사, 전조선야구대회 심판으로 활동한 체육인. 1889(고종 26)∼?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재학중이던 1909년 1월변희준(邊熙駿)·장순익(張淳翊)·유동수(柳東秀)·윤교중(尹敎重)·어윤빈(魚允斌) 등과 함께 동경유학생들로 구성된 대한흥학회
윤동주 / 尹東柱 [문학/현대문학]
1917-1945년. 시인. 본관은 파평(坡平). 아명은 해환(海煥). 북간도 명동촌(明東村) 출생. 아버지는 영석(永錫)이며, 어머니는 김룡(金龍)으로 기독교 장로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 아우 일주(一柱)와 당숙 영춘(永春)도 시인이다. 14세(193
윤봉길 / 尹奉吉 [역사/근대사]
1908-1932.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의사. 1932년 4월 29일 일본왕의 생일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켰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잡혀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해 11월 18일 일본에 호송되어 20일 오사카위수형무소
윤봉길의사유품 / 尹奉吉義士遺品 [예술·체육/공예]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인 윤봉길이 사용하였던 일괄유품. 보물 제568호. 모두 13종 68점으로서 그 가운데 10종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충의사기념관에 보관 중이며, 2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나머지 1종은 서울 윤남의 집에 소장되어 있다. 충의사기념관에 소장된 10종
윤순달 / 尹淳達 [역사/근대사]
1914년∼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출생지는 전라남도 강진(康津)이다. 1939년 경성콤그룹에서 박헌영(朴憲永)을 도와 광복 때까지 조선공산당재건을 위해 힘썼다. 1945년 8월 해방 후부터 조선공산당 광주시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6‧25전쟁 때 조선의
윤심덕 / 尹心悳 [예술·체육]
1897년∼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 성악가·배우.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 관비유학생으로 일본 우에노 음악학교 성학과에서 수업받았다. 1922년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조교생활 1년을 마친 뒤, 1923년 6월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독
윤치오 / 尹致旿 [예술·체육/체육]
일제강점기 중추원 부찬의, 찬의 등을 역임한 정치인.친일반민족행위자. 1869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출생했다. 처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김윤정의 딸이며, 윤웅렬은 백부이며 윤치호는 사촌 형이다. 중추원 참의를 지낸 윤치소와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을 지낸 윤치영은
윤치호 / 尹致昊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정치가·민족운동가(1865∼1945). 조선 외교관. 독립협회 회장. 1881년 신사유람단 어윤중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1883년 4월까지 동인사에 머물며 신학문을 배웠다. 1937년 중일전쟁시기 일제의 전시체제가 더욱 강화되자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로
윤희구 / 尹喜求 [종교·철학/유학]
항일기의 학자(1867∼1926). 유학의 아홉 가지 경서와 제자의 글과 역사책까지 두루 섭렵한 한문학자이다. 장지연과 함께 《대한예전》 편찬에 참여했고, 참상에 올라《증보문헌비고》를 증수했으며,《양조보감》을 편찬했다. 장지연·오세창과 함께 《대동시선》을 교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