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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 개항기
율구미 / 栗九美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안 어귀에 있었던 옛 지명. 1900년 러시아가 이 곳에 극동함대의 석탄저장소와 해군병원을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 나라 정부로부터 조차(租借)하기로 협약이 되었으나 1년 만에 일본의 항의로 취소되었다. 이 곳은 조선시대에 마산창(馬山倉)을 위
융희 / 隆熙 [역사/근대사]
1907년부터 사용된 대한제국의 마지막 연호.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의 즉위로 연호가 광무에서 융희로 바뀌어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사용되었다. 헤이그특사사건 이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순종에게 양위되면서, 1907년 8월 12일 새 연호가 선포되고 순종의 융희황
은산광산 / 殷山鑛山 [경제·산업/산업]
평안남도 순천군 신창면 숭산리에 있는 금·은 광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숭아산이 숭화산(崇化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산의 봉우리에 아난굴(阿難窟)이라는 석굴이 있으며, 이 굴 안에 큰 못이 있고, 이 못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사금(砂金)이 섞여 흘러내렸다고 기록되
은행 / 銀行 [경제·산업/경제]
예금을 맡기거나, 대부·어음할인 및 증권의 인수 등을 업무로 하는 금융기관. 우리 나라에 근대적 은행제도가 도입된 것은 1878년 일본의 제일은행이 부산에 지점을 개설하면서부터이며, 이에 자극을 받아 국내에서도 민족자본에 의한 은행의 설립이 추진되었다. 1897년의 한
을미개혁 / 乙未改革 [역사/근대사]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 이후 김홍집 내각이 추진한 근대적 개혁운동. 제3차 갑오개혁을 을미개혁이라고 한다. 을미개혁은 시기적으로 명성왕후 시해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국민의 반일감정이 극도에 이른 상황에서 강행된 것이었다. 따라서 개혁에 대한 국민의 저항은 높을 수밖
을미사변 / 乙未事變 [역사/근대사]
1895년 8월 20일 새벽 일본의 공권력 집단이 서울에서 자행한 조선왕후 살해사건. 을미사변은 단발령과 함께 19세기말 항일의병이 봉기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또한 신변이 위태롭게 된 고종이 이듬해 2월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을미의병 / 乙未義兵 [역사/근대사]
조선 말기 최초의 대규모 항일의병. 1895년 8월 20일 민비가 시해되고 뒤이어 왕후폐위조칙이 발표되자, 보수유생들은 ‘토역소(討逆疏)’ 등을 바쳐 친일정부의 폐위조처에 반대함은 물론, 일본군을 토벌, 구축하여 국모의 원수를 갚을 것을 주장하였였고, 의병을 일으켰다.
을사서행일기 / 乙巳西行日記 [언론·출판]
저자 박규호(1850-1930). 영인본. 책의 구성은 1책 11장이다. 저자인 박규호가 1905년 10월 24일부터 12월 8일까지 곽종석과 함께 서울을 방문했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일기체로 기록한 것이다. '을사'는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이며, '서
을사의병 / 乙巳義兵 [역사/근대사]
1905년부터 1906년 사이의 러일전쟁·을사오조약 등 일련의 일제침략을 계기로 일어난 구국항일무력전의 총칭. 을사의병의 봉기 양상은 본질적인 면에서 을미의병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을미의병이 해산된 뒤 은거 중이던 대부분의 의병장이 구국결사의 신념을 새롭게 다지면서
을사조약 / 乙巳條約 [역사/근대사]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하여 강제로 체결한 조약. 을사조약은 박제순과 일본특명전권공사 하야시 사이에 체결된 5개 조약이다. 이에 대해 우리 민족은 여러 형태의 저항으로 맞섰다. 장지연이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을 발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