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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경 / 黃潤慶 [역사/근대사]
1908-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봉화(奉化)이다. 1924년 3월 대성학원(大成學院)을 졸업하였으며, 1926년 4월 내성(乃城)프로운동자동맹 집행위원직을 맡아 사회주의사상 전파와 동지 규합 등에 힘쓰던 중 1927년 1월 일본 경찰에 체
황인수 / 黃麟秀 [역사/근대사]
1886-194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3·1운동 때 교하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최창섭 등과 장날을 기하여 계속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군자금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건국표창이 추서되었다.
황재옥 / 黃在玉 [역사/근대사]
1880-193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여주(驪州)이다. 1919년 4월 천도교 측의 지시를 받은 경성농업학교 재학생 원필희(元弼熙)가 경기도 여주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책임지고, 여주군의 각 면(面)을 돌며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만세시위운동
황재운 / 黃在雲 [역사/근대사]
1887-1939.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강서 출신. 본래 증산면 화선리 사람으로, 일을 보러 왔다가 1919년 3월 4일 최능현(崔能賢)·송현근(宋賢根) 등이 주동한 반석면 상사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반석교회와 원장교회가 중심이 되어 계획하던
황정해 / 黃正海 [역사/근대사]
1918-1941. 일제 강점기 항일군·사회주의운동가. 출생지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혼춘현(琿春縣)이다. 부친 독립운동가 황병길(黃炳吉)의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누나 손에 자랐다. 연통랍자(煙筒拉子)의 한인소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대황구
황종화 / 黃鍾和 [역사/근대사]
1878-1950.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진주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 경상남도 각지를 순회하면서 만세시위운동에 가담하여 독립선언문과 격문 등을 배포하여 각 지방에서의 만세운동을 선동하였다. 같은해 4월 이운형(李運衡)·이영봉(李永鳳)·김규열(金圭烈) 및 임
황주민란 / 黃州民亂 [역사/근대사]
1893년 겨울과 1894년 초 두번에 걸쳐 황해도 황주목에서 일어난 민란. 향임과 아전들의 작간과 수탈의 가중으로 발생하였는데, 1893년 겨울에 민중은 20조폐단을 들어 시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향임과 아전들의 집을 불태우거나 파괴하였다. 당시 황주 지방에는 궁방전이
황진연 / 黃珍淵 [역사/근대사]
1899-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명천(明川)이다. 1918년 1월 거주지를 만주(滿洲)로 옮긴 후 한의원을 운영하며 사회주의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당원이 되었다. 1930년 ‘간도 5·30봉기’ 때 길림성(吉林省) 연
황찬서 / 黃贊西 [역사/근대사]
1873-191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황찬서(黃贊瑞)이다. 일제의 강제 병합 이후 강한 항일의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의병 활동을 선전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이후 남원(南原)에서 일본 상품의 불매운동, 세금불납, 토지 불매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황창섭 / 黃昌燮 [역사/근대사]
1896-194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예천(醴泉)이다. 잡화상·자전거포·철공업 등에 종사하였다. 1925년 예천청년회 검사위원·예천신흥청년회 교양부담당 상무집행위원·사회주의 사상단체 오오회(五五會) 집행위원, 1927년 예천사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