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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섭 / 洪燦燮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천원 출신. 1919년 3월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칠곡리에서 이유석(李裕奭)·이근수(李根洙)·이덕순(李德順)·최은식(崔殷植)·이희룡(李熙龍)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4월 1일 오후 8시경 원곡면사무소 앞에
홍충희 / 洪忠熹 [역사/근대사]
1878-1946. 독립운동가. 서울 출생. 호는 우봉(禹峰). 1903년 대한제국 무관학교 보병과를 졸업하고 대한제국 육군부위(陸軍副尉)를 지냈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가운데의 한 사람인 권동진(權東鎭)을 도와 참여한 뒤 김규식(金奎植)·김찬수
홍학순 / 洪學淳 [역사/근대사]
1902-1934. 독립운동가. 일명 홍학원(洪學元)·홍학(洪學).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9년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 1924년 무장 항일운동단체인 대한통의부(大韓通義府) 제5중대에 입대하여 국내에서 일본경찰과 접전하면서 군자금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192
홍효선 / 洪孝善 [역사/근대사]
1879-1932. 독립운동가. 경기도 화성 출신.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송산면 사강리 일대에서 홍면(洪)·왕광연(王光演)·문상익(文相翊)·홍명선(洪明善)·김교창(金敎昌) 등이 주동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6일 송산면사무소 앞에
황갑주 / 黃甲周 [역사/근대사]
1894-미상.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해수(海水)이고, 호는 배천(配泉)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승지(承旨) 황적(黃迪)의 12세손이다. 조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황치방(黃致坊)이다. 1919년 3·1운동(三一運動)이 일어난 후, 3월 10일 전라북도
황기환 / 黃玘煥 [역사/근대사]
미상-1923.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순천 출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유럽외교 및 파리강화회의의 외교활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파리에 김규식(金奎植)을 파견, 설치한 주파리위원부(駐巴里委員部)에서 서기장(書記長)으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김규식을 도와 파리강
황덕환 / 黃德煥 [역사/근대사]
1895-1929. 독립운동가. 일명 건(鍵). 함경남도 원산 출신. 1913년 일본으로가서 동경(東京)의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에 입학, 수학하다가 1916년 10월 만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23년 1월 다시 만주로 건너가서 항일운동을 계속하였으며
황무지개척권반대운동 / 荒蕪地開拓權反對運動 [역사/근대사]
일본이 황무지 개척권을 강제로 요구해오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1904년에 있었던 일련의 항일운동. 황무지개척권반대운동은 상소운동, 언론운동, 보안회 활동 등으로 전개되었다. 보안회의 이와 같은 반대운동은 1898년 독립협회가 벌인 만민공동회 이후 최대의 민중구국
황병길 / 黃炳吉 [역사/근대사]
1867-1920.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경술국치 후 시베리아로 망명, 이범윤의 산포대에 편입해 항일전을 펼쳤다. 한민회를 조직해 독립군양성에 힘썼다. 북로군정서와 통합해 청산리전투를 치른 후 일본군에게 피살되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황병학 / 黃炳學 [역사/근대사]
1876-1931. 독립운동가.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영문(英文). 전라남도 광양 출생. 재모(在模)의 아들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국운이 기울어져감을 통분, 황사중(黃士中)·한성순(韓性純)·고견(高堅) 등과 협의,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