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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
밀양신법리유적 / 密陽新法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읍 신법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석관묘 유적. 밀양시에서 서쪽으로 약 10㎞ 지점에 무안중학교(武安中學校)가 있는데 1960년경 교정에서 공사를 하다가 석관묘가 발견되었다.이 무덤은 여러 개의 점판암으로 축조되었는데 그 너비는 40㎝, 전체길이는 1
바리모양토기 / ─土器 [역사/선사시대사]
항아리모양 토기와 달리 목이 없이 아가리와 몸통이 바로 연결된 토기. 아가리의 지름보다 몸통의 높이가 높은 것을 깊은바리모양〔深鉢形〕토기라고 하고, 아가리 지름과 몸통 높이가 비슷한 것을 바리모양 토기라고 부르며, 높이보다 지름이 더 긴 것을 얕은바리모양〔淺鉢形〕토기라
바위그림 [역사/선사시대사]
바위 위나 큰 절벽, 동굴 내 벽면 등에 사물이나 기호를 쪼으기·새기기·칠하기 등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 암각화(巖刻畵), 혹은 암각(巖刻), 암화(巖畵) 등으로도 불린다. 바위그림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에서도 발견되지만, 전형적인 사례들은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유적
박건웅 / 朴健雄 [역사/근대사]
1906-미상. 독립운동가·정치인. 별명은 건웅(建雄)·김정우(金政友).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26년 10월 중국 광둥(廣東)에 있던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의 보병과를 제4기로 졸업하고 중국군에 복무하였다. 그뒤 1928년 9월 상해(上海)의 중국본부한인청년동
박기상 / 朴岐爽 [역사/근대사]
1888-193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이명(異名)은 박사국(朴士國)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출신이다. 아버지는 박병돈(朴秉敦)이다. 1919년 3월 19일 이정(李挺)·이병석(李秉釋)·정영모(鄭永模) 등과 함께 전라북도 익산시(益
박문국 / 博文局 [역사/근대사]
1883년 인쇄, 출판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박문국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산하기관인 동문학의 신문발행 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신문발행경비는 특수한 세수권을 부여받아 충당되었고, 각 지방관아에 배부되어 그 수익금으로 유지되었다.
박문원 / 博文院 [역사/근대사]
1902년 궁내부에 소속되어 국내외의 고금도서, 신문, 잡지 등을 보관하던 관청. 대한제국 때 국내외의 온갖 서적을 보관하던 관청으로, 관원으로 장, 부장 각 1인, 찬의 2인, 감서 2인, 기사 3인이 있었다. 그 뒤 감서는 참서로, 기사는 주사로 바뀌었고, 참서와
박민웅 / 朴敏雄 [역사/조선시대사]
1674(현종 15)∼1732(영조 8). 조선 후기의 무신. 할아버지는 부사 원진, 청주에서 살았다. 도량과 재간이 뛰어나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여 소년 때부터 이름이 났다. 뒤에 장신 장붕익과 이봉상이 각각 국사로서 조정에 천거하였다. 충청병마우후겸창의사, 상주영
박상검 / 朴尙儉 [역사/조선시대사]
1702(숙종 28)∼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환관. 심익창에게 수학하였다. 김일경과 원휘가 차례로 영변부사로 부임해 심익창의 집에 자주 드나들자 이들과 친교를 맺게 되었다. 김일경으로부터 윤취상·원휘·심익창 등을 통해 받은 은화 수천 냥을 이용해 환관과 궁녀
박승빈 / 朴勝彬 [역사/근대사]
1880∼1943. 법률가·교육자·국어연구가.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중앙대학 법학과를 졸업, 돌아와서 법관으로 활약하다가 1910년 변호사를 개업하였으며, 1925년 보성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하였다. 국어표기법의 통일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된 데에 있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