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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룡포부용문보 / 袞龍袍付龍紋補 [생활/의생활]
황제의 상복(常服)인 황색 운보문사(雲寶紋紗) 곤룡포(袞龍袍) 1점과 곤룡포에 부착된 용문보(龍紋補). 대한제국 시기 황제용 황색 곤룡포로서 가슴과 등, 양어깨에 용무늬가 수놓인 원형의 용문보(龍紋補)가 부착되어 있어 '곤룡포부용문보'라는 명칭으로 지정되었다. 곤룡포는
곤륙재집 / 困六齋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문신·서예가 김의원의 시 「금성유회」·「송화월야」·「풍영대」 등을 수록한 시집. 6권 1책. 필사본. 조선 후기에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성암고서박물관에 있다.권1은 없어졌고, 권2∼7에는 시 359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서정이나 감회를 담은 것이 많다.「금성
곤륜집 / 昆侖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문신·학자 최창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25년에 간행한 시문집. 20권 8책. 활자본. 1725년(영조 1)에 간행되었다. 서문과 발문은 없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권1에 부(賦)·시, 권2∼5에 시, 권6에 서(序)·기, 권7∼9에 소·차(箚), 권10에
곤리도 / 昆里島 [지리/자연지리]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곤리리에 있는 섬. 2009년 기준으로 인구는 238명(남 125명, 여 113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세대수는 111세대이다. 취락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섬의 북쪽 만입부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임진왜란 이후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으로
곤명 / 昆明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옛 지명. 조선 초기까지 경상도에 있었다. 삼국시대의 명칭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고려 현종 때 진주목에 속하였다. 1419년(세종 1) 현의 북쪽 20리 지점인 소곡산(所谷山)에 어태(御胎: 왕의 태)를 안치한 뒤, 남해현(南海縣)과 합쳐 곤남군
곤미 / 昆湄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고미현(古彌縣)인데, 757년(경덕왕 16) 곤미로 이름을 바꾸었다.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다가 1018년(현종 9) 영암군으로 되었다. 영암군 곤일시면(昆一始面)ㆍ곤일종면(昆一終面)ㆍ곤이시면(昆二始面)ㆍ곤이종면(昆二終面)
곤방 / 棍棒 [예술·체육/체육]
목재를 깎아 손으로 잡기 편하게 만든 목봉을 가지고 하는 경기. 길이 7자 되는 이 목봉을 가지고 서로 겨루어서 승부를 가름하는 이십사반무예(二十四般武藝)의 하나이다.『무예도보통지 武藝圖譜通志』 곤봉보(棍棒譜)에 수록되어 있으며, 모두 14세(勢)로 되어 있다. 우리
곤암문집 / 困菴文集 [종교·철학/유학]
조선전기 문신 소세량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46년에 간행한 시문집. 1권 1책. 목활자본. 1746년(영조 22) 초간되었던 것을 대본으로, 1927년 후손 학규(學奎)·현규(現奎)·상규(尙奎) 등이 전주 영모재(永慕齋)에서 증보, 중간하였다. 권두에 전우(田愚)의
곤양 / 昆陽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사천 지역의 옛 지명. 신라 때의 이름은 자세하지 않으나, 고려시대에는 곤명현(昆明縣)이라 하였고 1018년(현종 9) 진주(晉州)에 예속되었다. 1419년(세종 1) 군 북쪽의 소곡산(所谷山)에 어태(御胎)가 봉안되었다고 하여 남해현(南海縣)과 합쳐 곤남군(
곤양군읍지 / 昆陽郡邑誌 [지리/인문지리]
1899년에 편찬된 경상남도 곤양군(지금의 사천시) 읍지. 1책. 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표지에는 ‘慶尙南道昆陽郡邑誌(경상남도곤양군읍지)’로 되어 있다. 내용구성은 강계(疆界)·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관직(官職)·성씨(姓氏)·산천(山川)·풍속(風俗)·방리(坊
곤양향교 / 昆陽鄕校 [교육/교육]
경상남도 사천시 곤양면 송전리에 있는 향교.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당시 교동(校洞)에 창건되었다. 1807년에 위치가 좁고 나쁘다 하여, 곤양군수 신오(申晤)가 향유(鄕儒)들과 함께 현위치로
곤언 / 困言 [언론·출판/출판]
별집류(別集類). 명석정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다. 책수는 1책이며, 판종은 필사본(筆寫本)이다. 규격은 28.1×19.3cm이다. 표제는 곤언(困言)이다.
곤여도설 / 坤輿圖說 [종교·철학/천주교]
예수회의 선교사 페르비스트가 북경에서 1672년에 저술한 지리서.천주교서. 이 책은 일찍이 조선에 전해져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읽혔다. 우선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塞說)』에 『곤여도설』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또한 이익의 제자인 신후담(愼後聃)의 저술 가운데에도
곤여만국전도 / 坤輿萬國全圖 [지리/인문지리]
1602년에 마테오 리치가 제작한 것을 1708년에 모사한 서양식 세계지도. 보물 제849호.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는 1602년(선조 35)에 이탈리아인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북경에서 제작한 것을 1708년(숙종 34) 조선에서 모사한 세계지도이다. 채색 필
곤여전도 / 坤輿全圖 [지리/인문지리]
1674년(현종 15)의 목판본 『곤여전도』를 모본으로 옮겨 그린 채색필사본의 세계지도. 1674년(현종 15)에 벨기에의 예수회 선교사 페르디난드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한자 이름 南懷仁, 1623∼1688)가 중국의 북경(北京)에서 간행한 목
곤원절 / 坤元節 [역사/근대사]
조선 최후의 왕 순종의 비 순종효황후의 탄생일. 1906년 순종효황후는 동궁계비로 책봉되고, 이듬해 순종의 즉위와 함께 황후가 되었다. 1908년 7월 궁내부대신 민병석이 황후탄신경절의 칭호를 곤원절로 개칭하자고 아뢰어 실시되었다. 날짜는 1908년 음력 8월 20일이
곤의서원 / 昆義書院 [교육/교육]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삼락리에 있었던 서원. 1738년(영조 14)에 함종어씨와 함안이씨의 문중 서원으로 건립되었다. 월정(月亭) 어연(魚淵)을 중심으로 그의 아들 면곡(綿谷) 어변갑(魚變甲)과 손자 구천(龜川) 어효첨(魚孝瞻)을 비롯하여 무진부사를 역임한 이운길(李
곤재우득록 / 困齋愚得錄 [종교·철학/유학]
조선전기 학자 정개청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88년에 간행한 시문집. 본집 3권 3책, 부록 2권 1책, 합 5권 4책. 목활자본. 1688년(숙종 14) 나만성(羅晩成)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허목(許穆)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나만성의 발문이 있다. 성균
곤파집 / 崑坡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학자 유도관의 시·제문·상량문·행장 등을 1850년에 필사한 시문집. 2권 2책. 필사본. 1850년(철종 1) 그의 손자 희(㙿)가 필사한 것이다. 권두에 정해일(鄭海日)의 서문과 권말에 정재수(鄭在洙)·기정진(奇正鎭) 등의 발문이 있다. 전라남도 장성의 변
곤학재집 / 困學齋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학자 신만하의 시·서(書)·제문·만사 등을 수록한 시문집. 5권 1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필사연대는 알 수 없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4에 시 40수, 부(賦) 2편, 서(書) 8편, 서(序) 1편, 기 1편, 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