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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조선 전기
민암부 / 民巖賦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에 조식(曺植)이 지은 부(賦). 모두 61구 421자. 당시 사회 현실에 대한 반항적인 백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풍자성이 짙은 문학작품이다. 『남명집』 제1권에 실려 있다. 조식은 「민암부」에서 당시 전제군주체제에서는 임금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것을 충(忠)이
밀양 / 密陽 [지리/자연지리]
지명. 1286년(충렬왕 12)에 밀양군(密陽郡)으로 되었던 것이 1390년(공양왕 2)에 밀양부(密陽府)로 승격되고, 조선 태종 1년에 군으로 환원되었다가 태종 15년에는 1,000호 이상이 되어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
박강생 / 朴剛生 [종교·철학/유학]
1369(공민왕 18)∼1422(세종 4). 고려 말 조선전기의 문신. 아버지는 침, 어머니는 박린의 딸이다. 1390년(공양왕 2)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에 보직되었다.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호조전서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1408년(태종 8) 진위사의 서장관
박계강 / 朴繼姜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의 여항시인(閭巷詩人). 중종 때부터 선조 때 사이에 활동하였다.『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의하면 원래 부유한 집안출신으로 40대까지 문자를 전혀 알지 못하였는데, 어느 날 길거리에서 천례(賤隷)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수모를 당하자, 즉시 발분하여 학업에
박광우 / 朴光佑 [종교·철학/유학]
1495(연산군 1)∼1545(명종 즉위년).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정지, 아버지는 인, 어머니는 장유성의 딸이다. 1525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1536년 재령군수로서 문장에 능하여 원접사를 수행하였고, 1545년 사간이 되었으나 을사사화로 하옥, 이어
박광우묘출토유물 / 朴光佑墓出土遺物 [예술·체육/공예]
조선 중기의 문신 박광우(朴光佑)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6호. 박광우의 묘는 원래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오산리에 있었다. 묘의 위치가 해방 이후 육군 작전지역 내에 있었기 때문에 후손들의 출입이 불가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묘 관리와 성묘를 제때에 할
박광전 / 朴光前 [종교·철학/유학]
1526(중종 21)∼1597(선조 30). 조선 중기의 의병장. 할아버지는 간, 아버지는 이의, 어머니는 최명기의 딸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1568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경기전참봉, 헌릉참봉, 회덕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597년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
박달목 / 朴達木 [경제·산업/산업]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재질이 치밀하고 견고하며 비중이 큰 나무. 박달목은 재질이 단단하여 각종 공사에 다양한 용도로 쓰였는데, 쓰임새에 따라 그 규격도 다양하였다. 운반 기기인 윤여나 수레 등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대여의 기둥과 초엽, 현주, 횡량,
박사 / 博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성균관·홍문관·승문원·교서관 등의 정7품 관직. 정원은 성균관에 3인, 홍문관에 1인, 승문원에 2인, 교서관에 2인이다. 연산군 때 성균관을 혁파하면서 박사직도 다른 관서로 나누어 보냈다가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원상회복되었다. 1895년(고종
박상 / 朴祥 [종교·철학/유학]
1474(성종 5)∼1530(중종 25). 조선 중기의 문신. 광리의 증손, 할아버지는 소, 아버지는 지흥, 어머니는 서종하의 딸이다. 1501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교서관정자, 승문원교검, 전라도사, 사간원헌납, 담양부사, 순천부사, 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