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선사 총 402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선사
광주신창동유적 / 光州新昌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철기시대 말기에서 원삼국시대 초기에 걸친 복합유적. 53개의 독널 중 외독〔單甕〕과 세독〔三甕〕짜리가 각각 하나씩이고, 나머지 51개는 모두 아가리를 맞붙인 대소 두 개의 이음독널〔合口式甕棺〕이었다. 독널의 크기는 가장 작은 것이 45㎝
광주운암동주거지 / 光州雲巖洞住居址 [역사/선사시대사]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어린이대공원에 위치한 청동기시대의 움집터 유적. 정식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집자리의 규모나 내용은 확실히 파악되지 못하였다. 이미 파괴된 단애면에 노출된 흑갈색층의 집터 바닥의 길이는 약 14m에 달하는데, 그 아래는 부식된 화강암
광주원산동주거지 / 光州院山洞住居址 [역사/선사시대사]
광주광역시 광산구 원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움집터 유적. 광주 송암동 집터와 인접해 있으며, 1977년 7월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바 있다. 산사태로 인해 집터의 대부분이 유실되었고 당시 남아 있던 규모는 남북 1.9m, 동서 2.3m로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었다.
광주일곡동유적 / 光州日谷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원삼국시대와 백제시대의 생활 유적. 출토유물은 이중구연호, 장란형토기, 발형토기, 시루, 방추차, 파수부토기 등 다양한 토기가 있었고, 석기는 숫돌 1점뿐이다. 그 중 이중구연호는 옹관이나 토광묘 등 분묘 유적에서 주로 출토되는 토기로 주
광주장지동유적 / 廣州牆枝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경기도 광주시 장지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백제 초기의 취락유적. 청동기시대 집터는 모두 8기이다. 제1호는 세장방형으로 장축 약 1.52㎝, 단축 약 240㎝, 깊이 28㎝이다. 내부에 벽도랑〔壁溝〕과 기둥구멍〔柱穴〕등이 있으며, 화덕자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집터 내에
광주충효동지석묘 / 光州忠孝洞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었던 초기철기시대의 고인돌. 영산강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된 4개의 댐 중 광주댐 수몰지구 내에 들어 있어 현재는 완전히 수몰되어 버렸다. 발굴은 1977년 4월 30일부터 5월 9일까지 전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실시되었다. 발굴결과 모두 7기
광탄마을고인돌 [역사/선사시대사]
평양시 강동군 남강노동자구 광탄마을에 있는 지석묘(支石墓). 남강로동자구와 란산리 사이에 있는 달현고개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광탄마을에서 약 100m 떨어져 있다. 이 무덤들은 고임돌의 기초도 얕게 묻혀 있고, 고임돌의 절반이상이 돌과 흙무지에 감싸여 있다. 석재도
구덩무덤 [역사/선사시대사]
적당한 크기의 구덩이를 파고 별도의 시설없이 시체를 직접 묻는 매장방법. 토장묘(土葬墓)와 같은 의미의 용어로 땅을 파고 시체를 묻는다는 뜻에서는 토광묘(土壙墓)와 같다. 그러나 두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토광묘는 시체를 넣을 구덩이를 분명하게 파서 바닥·벽
구덩식고분 / ─式古墳 [역사/선사시대사]
지하에 토광을 파고 매장하는 분묘. ‘수혈식고분(竪穴式古墳)’이라고도 한다. 구덩식 고분’이라는 말은 굴식(횡혈식)고분에 대한 말이기는 하나 고분의 발생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원초의 분묘는 모두 수혈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지하에 토광을 파고 매장하는 모든 형식이 수혈식
구례봉서리지석묘군 / 求禮鳳西里支石墓群 [역사/선사시대사]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 봉서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군. 전라남도 기념물 제149호. 구릉 일대에는 민묘가 자리잡고 있고 그 주위는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데 지석묘들은 민묘와 밭 주변에 3열을 이루고 분포되어 있다. 제8호 지석묘의 덮개돌에는 거북등 모양의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