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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강규언 / 姜圭彦 [역사/근대사]
1898-1927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교육자.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제주시 서귀포(西歸浦) 중문동(中文洞)에서 출생하였다. 1914년 전북 옥구군(沃溝郡) 개정면(開井面) 구암리(龜岩里) 영명중학교(永明中學校)에 입학하였다. 1919년 중학교 재학 중에, 교
강규찬 / 姜奎燦 [종교·철학/개신교]
1874년∼1945년. 장로교 목사. 평안북도 선천 출신. 예수교장로회 선교부가 경영하는 선천 신성중학교(信聖中學校)에서 봉직하면서,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그때 백낙준·박형룡·정석해 등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1911년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이승
강규해 / 姜奎海 [역사/근대사]
1901-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대동(大同)이다. 1927년 공산주의 청년동맹으로 1925년 4월 18일에 조직된 사회주의 운동단체인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였다. 1925년에 김재봉(金在鳳)·유진희(兪鎭熙)·김약수(金若水) 등이 서울에서
강균환 / 姜均煥 [역사/근대사]
1900-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위운동가. 본적은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이다. 1923년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응원회 집행위원·서울인쇄직공청년동맹 집행위원·한양청년연맹 집행위원 등에 선임되었다. 같은 해에 조선농민사 인쇄직공생활을 하면서, 경성인쇄직공조합
강근호 / 姜槿虎 [역사/근대사]
1888-1960. 독립운동가. 함경남도 정평 출신. 1916년 함흥중학교 2학년 재학중 학생사건으로 만주로 망명하여 1919년에 무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 10월 청산리대첩에도 참여하였다. 1921년 군정서 사관(軍政署士官)으로 활동했으며, 시베리아에서 자유시
강기덕 / 康基德 [역사/근대사]
1886-미상. 독립운동가. 3·1운동 때 48인 중의 한 사람. 자는 춘곡(春谷), 호는 덕재(德齋). 3·1운동 당시에 보성법률상업학교(普成法律商業學校) 학생으로 김성득(金性得)·김형기(金炯機)·김문진(金文珍)·김원벽(金元壁) 등과 함께 각 학교 학생들의 시위참여에
강기수 / 姜琪秀 [역사/근대사]
1898-1946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산청(山淸)이고, 거주지는 경상남도 함안(咸安)이다. 금융조합에서 서기로 재직하던 중 1919년 고종 황제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갔다가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한 후,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함안으로 돌아
강기운 / 姜基云 [역사/근대사]
1897-1944.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회령 출신. 1920년 구춘선(具春先)이 이끄는 국민회(國民會)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5월경 만주 화룡현(和龍縣)에서 국민부 제일남부지방 경호부장 장성순(張成順) 휘하의 송언지회(松堰支會) 경호원이 되었다. 활동은
강기적 / 康基迪 [역사/근대사]
1901-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평안북도 영변(寧邊)이다. 1925년 겨울 평안남도 평양(平壤)에서 그해 4월 18일에 공산주의 청년동맹으로 조직된 사회주의 운동단체인 고려공산청년회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25년 김재봉(金在鳳)·유진희(兪鎭熙)·
강기준 / 姜基準 [종교·철학/유학]
1876-1954.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낙언(樂彦)이고, 호는 난파(蘭坡)이다. 본관은 신천(信川)이다. 호남의 거유(巨儒) 참판(參判) 기정진(奇正鎭)의 손자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후진 양성에 힘써 많은 문인들을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