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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서유일기 / 西遊日記 [언론·출판]
저자 미상. 필사본. 불분권 1책. 1792년(정조 16)의 필사로 추정되는 저자 친필본이다. 본서의 표제는 <서유일기>로 되어 있지만 일반적인 일기 형태의 날짜와 상황이 모두 빠지고 감흥의 결과인 시만을 기록하였다. 일종의 유람시집인 셈이다.
서윤 / 庶尹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한성부·평양부의 종4품 관직. 정원은 1인이다. 1469년(예종 1)에 한성부의 관제를 개혁하여 종래의 정4품관이던 소윤을 없애고 종4품관으로 서윤을 두었다. 판윤·좌윤·우윤 등을 도왔는데, 1887년(고종 24) 관제의 개혁으로 폐지되었다. 세조 12년(1
서응순 / 徐應淳 [종교·철학/유학]
1824년(순조 24)∼1880년(고종 17). 조선 말기의 문신·학자. 달성부원군 종제의 후손이다. 유신환의 문하에서 심기택·민태호·김윤식 등과 함께 수학하였다. 1870년(고종 7) 음보로 선공감감역·군자감봉사·영춘현감, 간성군수로 부임하여 임지에서 죽었다. 성긴
서인충 / 徐仁忠 [종교·철학/유학]
1554-1610. 조선후기 유학자. 부친은 희, 모친은 전덕원의 딸이다. 1554년 9월 13일에 태어나 1591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다대진첨사, 부산진첨사를 역임하였다. 1610년 6월 10일 졸하였다. 박세온의 딸과 혼
서일 / 徐一 [종교·철학/대종교]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종교가(1881-1921). 호는 백포(白圃). 1911년 중광단을 조직하였고, 1919년 서로군정서를 개편하여 총재에 취임하였다. 1920년에는 청산리전투를 이끌었다. 대종교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저서로는 <삼일신고강의>, <회삼경> 등이
서장관 / 書狀官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부경사행 3사신 가운데 한 사행직. 중국에 보내던 부경사행의 일행인 정사·부사·기록관 등의 3사신 중 기록관으로 외교문서에 관한 직무를 분담하였다. 서장관은 사행중 매일매일의 사건을 기록하고 돌아온 뒤에는 왕에게 견문한 바를 보고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서재만 / 徐在萬 [역사/근대사]
1904년(광무 8) 9월 23일∼1984년 4월 19일.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청산면(靑山面)이다. 1923년 완도군 청산면(靑山面) 모도리(茅島里) 대모도(大茅島)에서 마을의 개량서당(改良書堂)을 후원하기 위한 배달청년회(倍達靑
서재승 / 徐在承 [종교·철학/유학]
1876년(고종 13)∼1915년. 한말의 의병.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분을 참지 못하여 탁지부 주사의 직을 사임하고 의병활동에 투신하여 군량모집 등에 활약하였다. 그뒤 1909년 스스로 의병을 일으켜 수년간에 걸쳐 항일전을 계속하다가 전세가 불리하여 영주
서재야회록 / 書齋夜會錄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에 신광한(申光漢)이 지은 가전체소설. 「서재야회록」은 벼루·먹·종이·붓의 문방사우를 의인화한 작품이다. 신광한의 한문단편소설집 『기재기이(企齋記異)』에 실려 있다. 주인공인 선비가 서당 밖에서 시를 읊다가 방안에 치의현관(䅔衣玄冠)·반의탈모(班衣脫帽)·백의윤
서재필 / 徐載弼 [역사/근대사]
현대의 정치가·독립운동가(1864-1951). 호는 송재(松齋). 1882년 3월 별시 문과 병과에 합격하여 교서관의 부정자에 임명되었다. 1884년 12월 김옥균·홍영식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켜 18세의 젊은 나이로 병조참판 겸 정령관이 되었으나 정변의 실패로 일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