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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 / 永柔 [지리/인문지리]
평안남도 평원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땅이었으나 오랫동안 황폐한 채로 있다가 고려 때정수현(定水縣)을 설치하였다. 그 뒤에 영청(永淸)으로 바꾸어 용강현(龍岡縣)에 속하게 하였으며, 뒤에 다시 현령을 두었다. 1256년(고종 43) 현령을 폐하고 안인진(安仁鎭
영일 / 迎日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포항 지역에 있었던 옛 지명. 동해 바다에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근오지현(斤烏支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임정현(臨汀縣)으로 개칭되었다가, 고려 건국 후 940년에 영일현(迎日縣)으로 칭하면서 생겨
영종대교 / 永宗大橋 [지리/인문지리]
인천광역시 서구 경서동(장도)과 중구 운북동(영종도)을 연결하는 다리. 2009년 10월인천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영종도 및 인천국제공항을 내륙 지역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으나, 민자 고속도로의 비싼 통행료(2010년 기준 승용차 편도 통행료 7,500원)로 인해 지
영주 / 永州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옛 지명. 신라의 절야화군(切也火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임고군(臨皐郡)으로 고쳤으며 영현(領縣)으로 도동(道同)ㆍ임천(臨川)ㆍ장진(長鎭)ㆍ신녕(新寧)ㆍ민백(黽白)이 있었다. 940년(태조 23) 도동ㆍ임천을 합쳐 영주라고 하고, 99
영주 / 英州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길주 지역의 옛 지명. 1108년(예종 3) 윤관(尹瓘)이 여진을 몰아낸 다음 몽라골령(蒙羅骨嶺) 아래에 성을 쌓고 안령군영주방어사(安嶺軍英州防禦使)를 설치하였다. 그 뒤 1109년 성을 철거하고 그 땅을 여진에게 다시 돌려주었으나, 공민왕 때 수복하고 139
영주 / 迎州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영변 지역의 옛 지명. 1429년(세종 11)연산(延山)과 무산(撫山)이 합쳐 영변대도호부가 되기까지 영주는 독립된 현으로 존속하였다. 영주는 본래 고려의 밀운군(密雲郡, 또는 安朔)이었는데, 970년(광종 21) 연주(延州)로 고쳐 지주(知州)로 삼았고, 성
영주 / 靈州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의주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려의 흥화진(興化鎭)이었는데, 1030년(현종 21) 주(州)로 승격하여 방어사를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주를 폐하고 의주에 내속시켰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의주 남쪽 압록강 하구에 있어 국방상의 요지였다. 백마산성(白馬山城)에서
영주 / 寧州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안주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식성군(息城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중반군(重盤郡)으로 고쳤다. 고려 태조 때 팽원군(彭原郡)으로 고쳤으며, 931년(태조 14) 안북부(安北府)를 설치하였고, 983년(성종 2) 영주안북대도호부(寧州安北大都護府)라고
영천 / 榮川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영주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내사군(奈巳郡)이었는데, 신라의 파사이사금 때 신라 영토로 되어 군을 설치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 내령군(奈靈郡)으로 고쳐 삭주(朔州) 소속의 군이 되었다. 940년(태조 23) 강주(剛州)로 고쳤으며 1018년(
영천댐 / 永川─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와 노항리에 있는 낙동강 지류인 금호강의 용수댐. 높이 42m, 제방 길이 300m이며, 총저수용량은 9640만t이다. 1974년 10월에 착공하여 1980년 12월에 준공되었으며, 해발고도 150m에 위치한다.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뒷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