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총 22,135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검색결과
황주목사계자기 / 黃州牧使戒子記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본. 1848년에 간행된 목판본 『삼설기(三說記)』에 실린 작품 중의 하나이다. 활자본 조선서관판 『별삼설기(別三說記)』에는 ‘황주목사기’라는 표제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예언설화를 소설화한 것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기생이라 하여도 애
황주민란 / 黃州民亂 [역사/근대사]
1893년 겨울과 1894년 초 두번에 걸쳐 황해도 황주목에서 일어난 민란. 향임과 아전들의 작간과 수탈의 가중으로 발생하였는데, 1893년 겨울에 민중은 20조폐단을 들어 시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향임과 아전들의 집을 불태우거나 파괴하였다. 당시 황주 지방에는 궁방전이
황주선봉리고분 / 黃州仙峰里古墳 [역사/선사시대사]
황해도 황주군 선봉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구덩무덤[土壙墓] 유적. 원래의 봉토는 방대형(方臺形)으로 규모는 동서 길이 11.5m, 남북 길이 14.5m, 높이 2.5m였다. 봉토의 꼭대기로부터 170㎝를 내려가 나타난 구덩의 상단 윤곽은 길이 4.1m, 너비 1.5m
황주천주리고분 / 黃州天柱里古墳 [역사/선사시대사]
황해도 황주군 천주리 한밭골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널무덤[土壙墓]유적. 출토된 유물은 청동기로 세형동검(細形銅劍) 1점, 차축두(車軸頭) 2점, 삿갓모양동기[笠頭形銅器] 2점, 을자모양동기[乙字形銅器] 1점, 관모양동기[管形銅器] 1점, 통형동기(筒形銅器) 2점, 금동
황주청룡리고분 / 黃州靑龍里古墳 [역사/선사시대사]
황해도 황주군 청룡리 정촌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덧널무덤[木槨墳]유적. 작업시의 목격자들에 의하면 지표 아래 약 50㎝에서 부식된 길쭉길쭉한 목편들이 250×100㎝의 범위에 걸쳐 나타나고, 유물은 이것들과 섞여서 남북으로 7∼8m의 사이를 두고 두 지점에서 거의 같
황주향교 / 黃州鄕校 [교육/교육]
황해도(현재의 황해북도) 황주군 황주읍 덕월리에 있는 향교. 조선 초기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대성전·좌우협실(左右夾室)·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신문(神門)·홍전문(紅箭門) 등이 있었
황주흑교리유적 / 黃州黑橋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황해도 황주군 흑교면 흑교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분묘 유적. 발견된 유물로는 날이 평행에 가까운 후기양식의 세형동검 1점, 동모(銅鉾) 1점, 十자형 칼자루끝장식[劍把頭飾] 1점, 전한시대의 오수전(五銖錢) 2점, 을자형관금구(乙字形管金具) 2점, 삿갓형자루끝[笠形柄
황준량 / 黃俊良 [종교·철학/유학]
1517(중종 12)∼1563(명종 18). 조선 중기의 문신. 황영손의 증손, 할아버지는 황효동, 아버지는 황치, 어머니는 황한필의 딸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40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권지성균관학유로 임명되고, 이어 성주훈도로 차출되었다. 신녕
황진연 / 黃珍淵 [역사/근대사]
1899-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명천(明川)이다. 1918년 1월 거주지를 만주(滿洲)로 옮긴 후 한의원을 운영하며 사회주의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당원이 되었다. 1930년 ‘간도 5·30봉기’ 때 길림성(吉林省) 연
황진이 / 黃眞伊 [문학/한문학]
조선전기 「박연」, 「청산리 벽계수야」, 「동짓달 기나긴 밤을」 등을 지은 기녀. 개성(開城) 출신. 확실한 생존연대는 미상이다. 중종 때의 사람이며 비교적 단명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황진이가 지은 한시에는 「박연(朴淵)」·「영반월(詠半月)」·「등만월대회고(登滿月
황찬서 / 黃贊西 [역사/근대사]
1873-191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황찬서(黃贊瑞)이다. 일제의 강제 병합 이후 강한 항일의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의병 활동을 선전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이후 남원(南原)에서 일본 상품의 불매운동, 세금불납, 토지 불매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황창섭 / 黃昌燮 [역사/근대사]
1896-194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예천(醴泉)이다. 잡화상·자전거포·철공업 등에 종사하였다. 1925년 예천청년회 검사위원·예천신흥청년회 교양부담당 상무집행위원·사회주의 사상단체 오오회(五五會) 집행위원, 1927년 예천사우회
황창오 / 黃昌五 [역사/근대사]
1896년-미상. 독립운동가. 경기도 화성 출생. 일찍이 조국광복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각오하고 있던 중,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적극 참가하여 고향인 화성군 태안면 삼정리에서 대중을 규합, 조직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계속 독립사상을 고취
황천혼시무가 / 黃泉─巫歌 [문학/구비문학]
함경남도 함흥 지역에서 전승되는 서사무가. 1926년 3월 당시 함경남도 함흥군 운전면 본궁리에 사는 김쌍돌이(金雙石伊)가 구송한 자료를 손진태(孫晉泰)가 채록하여 『조선신가유편(朝鮮神歌遺篇)』에 수록하였다. 송님동이·이동이·사마동이의 삼 형제가 7월 7일에 전지(田地
황철 / 黃鐵 [예술·체육/사진]
1864-1930. 사진가·서화가·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야조(冶祖), 호는 어문(魚門)·무명각주(無名閣主). 한성부(漢城府) 출생. 자헌대부 규장각제학 윤수(潤秀)의 둘째 아들이다. 서화가로서의 활동이 본격화된 것은 사진에서 떠난 이후로, 1913년부터는
황철나무 / Populus maximowiczii A.Henry [과학/식물]
버드나무과 사시나무속에 속하는 낙엽 교목. 황철나무는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큰키나무이다. 한국, 중국 동북부, 일본 혼슈 이북, 러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강원도와 평안남도 이북의 산지 하천 및 계곡부에 자생한다. 잘 자란 나무는 높이가 30m에 이른다. 학명
황초립 / 黃草笠 [정치·법제/법제·행정]
각 전ㆍ궁의 별감과 사복내외시 거달, 내취 등이 행행 할 때 쓰는 갓. 누런 빛깔의 가는 대로 만들며, 위는 좁고 아래가 넓은 원통형의 모옥과 원형의 양태로 되어 있다. 모정이 평평하다.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에서는 견마배가 청의를 입고 황초립을 썼다.
황최 / 黃最 [종교·철학/유학]
1680년(숙종 6)∼1750. 황우성의 아들이다. 1725년(영조 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대과는 실패하였다. 만년에 후진 양성에 전심하였는데 그 문하에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많았다. 저서로는 《독성재집》이 있다.
황최언 / 黃最彦 [종교·철학/유학]
1711년(숙종 37)∼미상. 조선 후기 문신. 황근중 5대손, 증조는 황석, 조부는 황응두이다. 부친 황수태와 모친 이만전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우정구이다. 1735년(영조 1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등용이 늦었다. 1769년(영조 45) 필
황태성 / 黃泰成 [역사/근대사]
1898-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다른 이름은 황전(黃錢)이다. 본적은 함경북도 길주(吉州)이다. 1920년 1월 길주청년회 결성에 가담하고 상무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1925년 2월 함북청년연합회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927년 사회주의 청년단체인 고려공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