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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 개항기
양복공 / 洋服工 [사회/사회구조]
각종 서양식 의복 및 주문복을 완제품으로 만들거나 개조, 수선하는 사람. 우리 나라에서 양복공이 등장한 것은 19세기말 서양문물의 전래와 함께 양복이 선보이면서부터라고 전해 온다. 20세기 초 점차 양복 입는 사람이 늘어가고 재봉틀이 수입되면서 전문 양복점이 생겨나기
양산 / 陽傘 [생활/민속]
주로 여자들이 햇빛을 가리기 위해서 쓰는 우산. 양산을 처음 사용한 계층은 외국에 주재한 외교관 부인이었으며, 이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현재 전하는 유물은 없고 영친왕의 모후인 엄귀비가 양장을 하고 양산을 든 사진만 전해지고 있다. 1910년대에 선교사가 경영
양주백수현가옥 / 楊州白壽鉉家屋 [생활/주생활]
경기도 양주군 남면 매곡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 중요민속자료 제128호. 명성황후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피난할 집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현재 안채의 일곽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원래 사랑채와 별당채가 더 있었다고 하며 안채, 행랑채 밖에 사랑채의 터전이 남아
양지아문 / 量地衙門 [역사/근대사]
구한말 전국의 토지를 측량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서. 1898년 탁지부 내에 설치되었다. 1901년 전국적인 흉년으로 양전사업이 중단되었고 양지아문은 1902년 지계아문에 통합되었다. 관원으로 총재 3인, 부총재관 2인, 기사원 3인, 서기 6인 등이 있었다.
양천주 / 養天主 [종교·철학/천도교]
사람의 몸에 한울님을 기른다는 뜻으로, 동학의 근본사상 가운데 하나. 사람의 몸에 이미 모시고 있는 바 그 한울님을 항시 끊임없이 힘써 길러야만 된다는 최시형의 주장이다. 양천주는 동학의 사상적인 극의로서의 시천주의 자각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볼 때, 이것은 시천주사상의
양헌수승전비 / 梁憲洙勝戰碑 [역사/근대사]
1873년 강화군민들이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 침공한 프랑스군대를 격퇴한 양헌수장군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화강암으로 건립된 비 앞면에는 ‘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巡撫千摠梁公憲洙勝戰碑)’라고 음각되어 있고, 비 뒷면에는 병인양요 양헌수 장군의공적이 수
양화나루·잠두봉유적 / 楊花나루·蠶頭峰遺跡 [종교·철학/천주교]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천주교 순교 유적. 사적 제399호. 1866년에 제1차 병인양요가 일어나면서 양화나루와 잠두봉은 천주교와 관계를 맺게된다. 이 해 로즈(Roze)가 이끄는 프랑스 극동 함대가 조선 원정을 시도한 끝에 8월 18일 양화진을 거쳐 서강
어공원 / 御供院 [역사/근대사]
구한말 왕실의 토지개간, 종식, 천택, 강해 및 국왕에게 진상하는 사무 등을 관리하던 관청. 1904년 궁내부에 설치되었고, 경, 서무과장 각 1명, 위원 2명, 주사 3명 등을 두었다. 그러나 즉시 폐지되었다.
어부림 / 魚付林 [경제·산업/산업]
물고기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할 목적으로 물가에 나무를 심어 이룬 숲. 어부림에 관한 법률상의 내용은 1908년에 발포한 <삼림령 森林令>에서 비로소 찾아볼 수 있다. 현행 우리나라의 <산림법> 제56조에는 보안림의 지정근거로서 제4항에 어류의 유치와 증식이 지적
어업권 / 漁業權 [경제·산업/산업]
일정한 수역에서 어업을 할 수 있는 권리. 우리나라에서 어업권제도가 창설된 것은 1909년이며, 그 뒤 몇 차례의 개정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존속되고 있다. 재산권으로서의 어업권에는 이상과 같은 각종 제한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또, 어업권은 존속기간도 한정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