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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운 / 洪錫雲 [역사/근대사]
1876-192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중화(中和)이다. 1920년 평양에 위치한 기홀병원(紀笏病院)에서 임시 정부에서 파견한 김석황(金錫璜)과 접선한 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하고 지령에 따라 결사의용단(決死義勇團)을 조직하였다. 김
홍석정 / 洪錫禎 [역사/근대사]
미상-191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홍석정(洪錫貞)이다. 1919년 3월 1일 이경섭(李景燮)으로부터 안봉하(安鳳河)에게 전달된 독립선언서를 김영만(金永萬)·나찬홍(羅燦洪)·이영철(李永喆)·안봉하·최용식(崔鎔植)·한청일(韓淸一) 등과 함께 각 지역에
홍석주 / 洪奭周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4∼1842). 1795년(정조 19) 춘당대문과에갑과로 급제하여 사옹원직장을 제수받았다. 1797년 승정원주서, 1802년(순조 2) 정언, 1808년 가선대부에 올라 병조참판, 1834년 이조판서, 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를 역임하였다
홍석호 / 洪碩浩 [역사/근대사]
미상-192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홍석호(洪錫浩)이다. 본적은 평안북도 삭주(朔州)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중국 만주(滿洲) 집안(輯安)이다. 1919년 3월 평안북도 삭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1운동 직후 부친을 따라 중국 남만주
홍선관시초 / 紅仙館詩鈔 [언론·출판]
저자 교중희(?-?). 필사본. 이 책은 교중희의 시집을 초록한 <몽홍선관시초>, 장보의 <범사도>와 <속범사도>에 실린 장보의 시와 당대 여러 명사들의 제영을 초록한 <범사도제영>과 <범사도제영속>, 오숭량이 자신의 시집에 붙인 제시를 필사하여 1책으로 합철한 것이
홍성 / 洪晟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2∼1778). 1723년(경종 3)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에 보직되었다가 1762년(영조 38) 지평에 올랐다. 1772년에 가자되어 지중추부사에 이르러 기로소에 들어갔다. 시와 글씨에 능하였다.
홍성용대기놀이 / 洪城龍大旗─ [생활/민속]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형산리에 전승되는 놀이.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의 호서속편에 용대기와 농악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수백 년 전부터 이 놀이가 행해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형산리에는 1824년(순조 24)에 만든 용대기가 보관되어 있으며, 이 놀이가 그
홍성익 / 洪成益 [역사/근대사]
1883-1920년.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정주 출신.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으로 활동하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1902년에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1907년에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신민회(新民會)에 가입, 국권회복운동에 참여하였다. 1910년 데라
홍세태 / 洪世泰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유하집』을 저술한 시인. 아버지는 무관이었던 익하(翊夏)이며 어머니는 강릉유씨(江陵劉氏)이다. 홍세태는 5세에 책을 읽을 줄 알고 7, 8세에는 글을 지을 만큼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으나 신분이 중인층이라 제약이 많았다. 시로 이름이 나서 김창협(金昌協)·김창
홍소라선 / 紅素羅扇 [정치·법제/법제·행정]
대한제국 시기 황후 의장으로 사용된, 붉은 비단으로 만든 부채.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 2방 의궤 도설에는 홍라소원선으로 칭하였다. 붉은 민무늬 비단으로 만든 둥근 모양의 부채로, 부채 및 자루의 길이는 1장 1자 2촌이고 지름은 3자 3치 5푼이다. 전면의 뒤쪽에
홍소원산 / 紅素圓傘 [정치·법제/법제·행정]
대한제국 시기 황후 의장으로 사용된 우산. 제도는 일산과 같은데, 홍화화주로 3개의 처마를 만든다. 덮개의 길이는 일산에 비해서 짧은 편이며, 유소는 드리우지 않는다. 산의 총 길이는 4자 2치 5푼이다. 자루 및 호로를 합한 길이는 1장 1자 2촌 9푼이다. 189
홍수보 / 洪秀輔 [종교·철학/유학]
1723년(경종 3)∼1800.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홍주문, 조부는 홍만기이다. 부친은 홍중효, 생부는 홍중후이다. 1756년(영조 32)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2년(영조 38) 승지로 재직 중 영조의 명을 받아 예문관 현판을 써 붙였다. 그 후 강
홍수산 / 紅繡傘 [정치·법제/법제·행정]
대한제국 시기 황후 의장으로 사용된 기물. 제도는 일산과 같은데, 운문의 홍화화주로 3개의 처마를 만든다. 맨 윗 처마에는 운봉문을, 아래 두 처마에는 서초문을 그린다. 덮개의 길이는 일산에 비해서 짧은 편이며, 유소는 드리우지 않는다. 산의 총 길이는 4자 2치 5
홍수설화 / 洪水說話 [문학/구비문학]
홍수를 소재로 한 설화. 한국의 홍수설화도 위와 같은 세계적인 광포성(廣布性)과 한국적인 특수성을 동시에 지닌다. 그런데 그 동안 한국의 홍수설화는 세계에 소개된 바가 없다. 한국의 홍수에 관한 지명전설은 다른 전설보다 월등히 많아 한반도에 700곳이 있을 정도이다.
홍수주 / 洪受疇 [종교·철학/유학]
1642(인조 20)∼1704(숙종 30). 조선 후기의 선비화가. 처윤 아들이다. 1682년(숙종 8) 문과에 급제, 벼슬은 승지·충청도관찰사·대사간 등을 거쳐 예조참의에 이르렀다. 1695년 동지사행의 부사로 중국에 다녀왔다. 유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묵매
홍수치방선 / 紅繡雉方扇 [정치·법제/법제·행정]
대한제국 시기 황후 의장으로 사용된 기물. 붉은 민무늬 비단 위에 꿩 문양을 수놓아 만든 위가 둥근 장방형의 부채. 부채 및 자루의 길이는 1장 1자 2촌이다. 전면에는 중앙에 난봉화문 그리고, 뒤쪽에는 청화화주에 금으로 꽃 문양을 그린다. 전면의 풍의는 백화화주로
홍순갑 / 洪淳甲 [역사/근대사]
1896-1929. 독립운동가. 호는 우당(愚堂). 전라북도 익산 출신. 1919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재학 중 3·1 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하여 이상재(李商在) 지도 아래 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 1921년에 붙잡혀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며, 출옥 후 중국
홍순녕 / 洪淳寧 [교육/교육]
1887-1949년. 일제강점기 교육자. 호는 남농(南農)이다. 1910년(융희 4) 4월 공립(公立) 수원농림학교(水原農林學校)를 졸업한 뒤 제주(濟州)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중등교사(中等敎師)가 되어, 1912년 5월 공립 제주농업학교(濟州農業學校)에 교사로 발령받
홍순목 / 洪淳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6∼1884). 갑신정변을 일으킨 영식의 아버지이다. 1844년(헌종 10) 증광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지평·수찬을 지내고, 1846년 초계문신에 뽑혔다. 1863년 대사헌이 되었으며, 1872년 영의정을 거쳐 영돈령부사가 되었다. 1876년
홍순범 / 洪順範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만주(滿洲)로 이주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27결사대(決死隊)에 가담하여 이탁(李鐸)의 주도로 김병수(金炳洙)·김용우(金容友)·나경호(羅景鎬)·노윤선(盧胤善)·박기제(朴基濟)·박기한(朴基寒)·박진태(朴鎭台)·송동호(宋東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