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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아문 / 度支衙門 [역사/근대사]
구한말 국가 재무를 총괄하였던 중앙행정관청. 1894년에 갑오개혁이 추진되면서 6월 28일 군국기무처의 의안에 따라 궁내부와 의정부로 나누고 의정부 아래 8아문을 설치, 7월 20일부터는 아문관제에 따라 직무를 관장하도록 하였다. 탁지아문은 구제도 아래서의 호조, 친군
태극장 / 太極章 [역사/근대사]
1900년 4월 칙령 제13호로 제정된 훈장. 훈등은 훈에 해당하고 이화대훈장 아래에 있으며, 1등에서 8등까지의 등차를 두었고, 문무관 중에서 공훈에 따라 수여하였다. 1등의 정장은 대수로서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리에 드리우고, 부장은 왼쪽 가슴에 단다. 2등의 정
태극학회 / 太極學會 [역사/근대사]
1905년 일본 도쿄에서 서북지방 출신 유학생들이 결성한 친목단체·계몽단체. 처음에는 학술 연마와 친목을 목적으로 한 순수한 유학생의 친목모임이었으나, 계몽단체로서 민족운동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학회지(월간)인 『태극학보』를 발간하고, 산하에 태극학교(초기에는 강습소)
태복사 / 太僕司 [역사/근대사]
구한말 임금의 거마와 조마 등을 관장하였던 관서. 1895년 종래의 태복시(太僕寺)를 개칭한 것이다. 관원으로는 주임관인 장 1인, 판임관인 주사 2인, 내승 2인을 두었으나, 내승은 곧 감원하고 주사 1인을 증원하였다. 1902년에는 주임관인 기사 1인을 증원하였다.
태학사 / 太學士 [역사/근대사]
구한말 궁내부 소속의 문관직. 갑오개혁 때 종래의 홍문관과 예문관을 합쳐 경연청을 궁내부 내에 설치하였는데, 이 기관의 장으로 태학사 1인을 두고, 그 아래 학사, 부학사 각 1인과 시강과 시독 각 2인을 두었다. 태학사가 궐석일 경우에는 궁내부대신이 이미 태학사를
태화관 / 泰和館 [역사/근대사]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곳. 지금의 종로구 인사동에 있던 요리집으로 명월관(明月館)의 분점격이었다. 명월관은 개점 초기부터 대한제국의 고관과 친일파 인물들이 출입하였으며, 후기에는 문인·언론인들과 국외에서 잠입한 애국지사들의 밀담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 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역사/근대사]
구한말 외교통상사무를 관장할 목적으로 통리아문을 확충개편하여 만든 중앙관청. 1882년 12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은 4사로 분치하고, 통리내무아문은 통리군국사무아문으로 개칭하여 7사를 분치하였다. 이에 따라 대내외적인 직무가 분장되어 근대적 기구가 확립되었다. 통리교섭
통리군국사무아문 / 統理軍國事務衙門 [역사/근대사]
구한말 군국기무와 편민이국(便民利國)에 관한 업무를 위해 설치한 중앙관청. 군국기무 및 외교통상문제를 총령하는 정부기관으로 1880년 말에 설치된 통리기무아문은 청나라의 제도를 참작하기는 하였으나 새로운 문물제도를 수용하려는 조선에 있어서 중요한 제도개혁이었다. 임오군
통리내무아문 / 統理內務衙門 [역사/근대사]
1882년 편민이국(便民利國)에 관한사무를 관장하던 중앙관청. 백성의 편익을 도모하는 편민, 나라를 이롭게 하는 이국에 관한 사무를 맡은 통리내부아문은 청의 총리각국사무아문을 모방한 제도였다. 이 기구는 1882년 6월 임오군란으로 잠시 폐지되었으나, 7월 기무처라는
통리아문 / 統理衙門 [역사/근대사]
1882년 외교통상문제를 관장하던 관청. 외무아문이라고 하며, 외교일체의 사무를 판리하기 위하여 1882년 11월에 설치되었다. 관원은 판리사무에 조영하, 협판사무에 김홍집, 참의사무에 독일사람 묄렌도르프 등이었다. 이 관청과 함께 다음날에는 통리내무아문을 설치하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