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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 扶餘陵山里寺址石造舍利龕 [예술·체육/공예]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사리감. 국보 제288호. 높이 74㎝, 너비 50㎝. 능산리 절터는 부여 능산리고분군과 나성(羅城) 사이에 있는 절터로 일탑일금당식(一塔一金堂式)의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는 백제시대 유적이다. 1995년 발굴조사 당시 이미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 扶餘 珠岩里 銀杏─ [과학/식물]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에 있는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20호. 높이 25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9.2m로서 지상 2m 정도에서 가지가 갈라지기 시작하여 동서로 29.25m, 남북으로 30m 정도 퍼졌으며, 나무의 나이는 8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마을 뒤에
부여과 / 副勵果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서반 종6품의 토관직. 영흥부의 진북위에 2인, 평양부의 진서위에 2인, 영변대도호부의 진변위에 2인, 경성도호부의 진봉위에 2인, 의주목의 진강위에 1인, 회령도호부·경원도호부의 회원위에 1인, 종성도호부·온성도호부·부령도호부·경흥도호부의 유원위에 1인,
부여군 / 扶餘郡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군. 동쪽은 논산시, 서쪽은 서천군·보령시, 남쪽은 금강을 경계로 전라북도 익산시, 북쪽은 공주시·청양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44′∼ 127°03′, 북위 36°04′∼ 36°23′에 위치한다. 면적은 624.57㎢이고, 인구는 7만
부여금사리성당 / 扶餘金寺里聖堂 [종교·철학/천주교]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48호. 1901년 4월27일 공주본당에서 분리 설정됐으며, 설정 당시에는 ‘홍산성당’ 또는 ‘소양리성당’이라고 불렀다.
부여나복리유적 / 扶餘羅福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나복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걸친 유물산포지. 출토유물로는 마제석촉·마제석검·반월형석도 등 완형석기와 함께 석기제작시 부수적으로 나오는 석기파편, 또는 미완성 석기도 다수 채집되었다. 이밖에 무문토기편 다수와 빗살무늬토기편 2점도 출
부여노정기 / 扶餘路程紀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에 정부인(貞夫人) 연안이씨가 지은 규방가사. 4음보 1구로 계산하여 112구이며, 2음보 1구로 계산하면 217구이다. 형식은 음수에서 3·4조와 4·4조가 주축이며, 가끔은 3·3조, 2·3조, 2·4조 등도 나타난다. 조선 영조∼순조(1737∼1815)
부여맹 / 副勵猛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서반 종8품의 토관직. 영흥부의 진북위에 3인, 평양부의 진서위에 4인, 영변대도호부의 진변위에 3인, 경성도호부의 진봉위에 3인, 의주목의 진강위에 3인, 회령도호부·경원도호부의 회원위에 3인, 종성도호부·온성도호부·부령도호부·경흥도호부의 유원위에 2인,
부여성 / 扶餘城 [지리/인문지리]
중국 요령성 용안(龍安)에 있었던 초기국가시대 부여의 성곽. 본래 부여의 옛 성이었는데 고구려에서 그대로 부여성이라 하였다. 보장왕 때 당태종의 침입을 안시성(安市城)에서 막기는 하였으나 백암성(白巖城)ㆍ비사성(卑沙城)ㆍ신성(新城) 등 10여 개의 성을 당에게 빼앗겨
부여쌍북리북요지 / 扶餘雙北里北窯址 [예술·체육/공예]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연화문 와당·인각명와조각 등이 출토된 가마터. 충청남도 기념물 제41호. 면적 331㎡. 전에는 이 부근에서 백제시대의 석제 불두(佛頭)가 발견된 바 있어 절터로 알려져오던 곳인데, 이곳에서 건축공사를 진행하던 중 백제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