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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김시은 / 金時殷 [역사/근대사]
1887-1957.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농산(聾山)이며,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제주도 신좌면(新左面) 출신이다. 1919년 제주도 ‘조천만세운동’을 주도한 14명 중 한 사람이다. 서울에서 3·1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귀향한 조카 김장환(金章煥)
김시점 / 金時漸 [역사/근대사]
1882-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북도 정주(定州) 곽산(郭山)이다.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1913년 3월 20일 무죄로 출옥한 후 만주(滿洲)로 망명하였다. 1919년 만주 안동현(安東縣)에서 김승만(金承萬)·오
김시형 / 金時馨 [역사/근대사]
1894-195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배천(白川)이고, 본적은 평안북도 용천(龍川)이다. 1919년 3·1 독립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다. 1920년 11월 임시 정부 연통제 평안북도 독판부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광복
김시황 / 金時晄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중량(仲亮).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20년 김동식(金東植, 일명 攸信)·한우종(韓禹鍾)·백운기(白雲起)·김도원(金道源)·조원세(趙元世)·박초식(朴楚植)·박종식(朴宗植) 등과 함께 의주군의 동암산(東巖山)에서 의용군을 모집, 훈련하여
김신근 / 金信根 [역사/근대사]
1878-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홍원(洪原)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정(龍井)이다. 1919년 2월 중국 길림성 용정촌(龍井村) 영신학교(永新學校)에서 기독동지청년회(基督同志靑年會)를 조직하고 연
김약수 / 金若水 [정치·법제/정치]
1892년(고종 29)∼미상. 노동운동가·정치가. 서울의 휘문의숙과 경성공업학교를 졸업, 3·1운동의 소식이 중국에 전해지자 김원봉과 헤어져 이여성과 함께 귀국하였다. 1923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국내에 잠입한 정재달과 접촉하여 구금, 1924년 4월에는 김사국·
김억 / 金億 [문학/현대문학]
항일기의 시인·평론가(1896-?). 호는 안서·안서생(岸曙生)·A. S..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과정에 그가 남긴 공적은 매우 컸다. 특히, 1921년 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역시집 《오뇌의 무도》가 폐허 및 백조동인들의 초기시에 미친 영향은 더욱 주목된다. 그리고
김억득 / 金億得 [예술·체육/국악]
생몰년 미상. 일제강점기의 국악가. 전라북도 남원시(南原市) 쌍교동(雙橋洞)에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김사문(金士文)이다. 성품이 호협하고 생각이 진취적이며, 창의력이 뛰어나 문예활동이 왕성했다. 전국의 명창, 명기들을 모아 서울에서 협률사(協律社)를 조직하였고, 《
김여진 / 金麗鎭 [역사/근대사]
185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수안(遂安)이다. 천도교구장이었던 안봉하(安鳳河)를 중심으로 나용일(羅龍一)·장성도(張聖道)·김동선(金洞宣)·이달하(李達河)·안창식(安昌植)·홍길재(洪吉載)·홍두익(洪斗益)·이응호(李應浩)·이윤식(李潤植) 등과
김연순 / 金演淳 [역사/근대사]
1881-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기독교인.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盈德)이다. 1919년 3월 19일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신기동(新基洞) 구장 이현설(李鉉卨)과 이수각(李壽珏)·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