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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려
운산향교 / 雲山鄕校 [교육/교육]
평안북도 운산군 운산면 읍내동에 있는 향교. 고려 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당시의 경내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동재(東齋)·서재(西齋)·교관실(敎官室)·제기고(祭器庫)·동서협문(東西夾門)
웅주 / 雄州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길주 지역의 옛 지명. 1108년(예종 3) 윤관(尹瓘)이 여진을 몰아낸 다음 화관령(火串嶺) 아래에 성을 쌓고 영해군웅주방어사(寧海郡雄州防禦使)를 설치하였다. 그 뒤 1109년에 성을 철거하고 그 지역을 여진에게 돌려주었는데, 공민왕 때에 다시 여진을 쫓고
원주향교 / 原州鄕校 [교육/교육]
강원도 원주시 명륜동에 있는 향교. 고려 인종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422년(세종 4) 목사 신호(申浩)가 중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03년(선조 36) 이택(李澤)이 대성전을 중건하였다
원천석 / 元天錫 [종교·철학/유학]
1330(충숙왕 17)∼? 고려 말 조선 초의 은사.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이다. 할아버지는 열, 아버지는 윤적이다. 원주원씨의 중시조이다. 어릴 때부터 재명이 있었으며, 문장이 여유있고 학문이 해박해 진사가 되었다. 그러나 고려 말에 정치가 문란함을 보고 개탄하면서
위주 / 渭州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영변 지역의 옛 지명. 고려 때 위주(渭州)로 고쳐 방어사를 두었고, 1050년(문종 4) 토성을 쌓았다. 그 뒤 무주(撫州)에 합쳤고, 1261년(원종 2) 무주의 치소가 된 적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이 영변의 서북쪽 40리 지점에 있다 하였으므로 오
유가사지론각필구결 / 瑜伽師地論角筆口訣 [언어/언어/문자]
『유가사지론』의 한문 원문을 우리말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각필(角筆)로 토를 단 책. 각필구결(角筆口訣)은 고려시대 이전에 한문 원문을 당시 한국어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특수하게 토를 단 석독구결(釋讀口訣)의 일종이다. 한자의 자형을 이용한 구결자 대신 각필이라는
유가사지론석독구결 / 瑜伽師地論釋讀口訣 [언어/언어/문자]
고려 재조대장경 『유가사지론』의 한문 원문을 우리말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토를 단 책. 인도의 무착(無著)이 미륵보살의 설법을 듣고 지었다는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을 당(唐)의 현장(玄奘)이 648년에 한문으로 번역한 100권 가운데 제20권에 해당한다. 권말에
유구곡 / 維鳩曲 [문학/고전시가]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시용향악보 時用鄕樂譜』에 실려 있다. 예종은 「버국새 伐谷鳥」를 지어 궁중에 있는 교방기생(敎坊妓生)들에게 부르게 하였는데, 이것이 『시용향악보』에 실려 있는 「비두로기노래」일 것이라는 설이 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비두로기
유금필 / 庾黔弼 [종교·철학/유학]
?~941년(태조 24). 고려 전기의 무신. 태조를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워 개국공신이 되었다. 929년 견훤이 고창군(古昌郡)을 포위·공격하자 많은 장수들이 진군을 망설였다. 그러나 유금필은 홀로 결사적인 태도로 임해 저수봉(猪首峰)으로부터 돌격
유등정 / 柳等井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용천 지역의 옛 지명. 용천 남쪽 15리 지점에 있었다는 문헌상의 기록만 있을 뿐 변화과정은 불확실하다. 위치상으로 해안지방의 남창(南倉) 부근이 된다. 이 지역은 용호봉(龍虎峯)에서 뻗은 두 개의 산줄기가 해안 지역으로 뻗쳐 동서로 감싸고 있었다. 해안지방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