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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김승곤 / 金勝坤 [역사/근대사]
191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황민(黃民)·호영(胡英)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본적은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담양읍(潭陽邑)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서울 성동구(城東區) 금호동(金湖洞)이다. 1933년 중국 망명 후 9월 1일 입교
김승기 / 金勝基 [역사/근대사]
1924-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이산면(伊山面)이고, 거주지도 경상북도 영주이다.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 강제 징용과 각종 수탈을 만행하자, 일본의 강압적인 행위에 분노하여 야학 교사로 활동을 하는 한편 일본
김승만 / 金承萬 [역사/근대사]
미상-1935. 독립운동가. 호는 죽림(竹林).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뒤에 신의주로 이거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 안동현에서 이륭양행(怡隆洋行) 주인인 영국사람 쇼우(Show, G.)의 집을 근거로 여순근(呂淳根)·김두만(金斗萬)·오동진(吳東振)·홍
김승민 / 金升旼 [역사/근대사]
1872-1931. 독립운동가. 함경남도 함주 출신. 1906년 비서감(祕書監)으로 재직할 때 항일의병과 내통했다는 소위 밀칙사건(密勅事件)에 관련되어 2년간 복역하였다. 1909년 헤이그특사사건에 연좌되어 다시 6개월간 복역한 뒤 만주로 망명하였다. 1920년 봉천(
김승빈 / 金承彬 [역사/근대사]
1895-198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명은 김병주(金炳疇)이다. 출신지는 평안남도 강서이다. 부친 김경서(金慶瑞)와 모친 박씨(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910년(융희 4) 고향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1915년 서울의 구황실 근위대에 입대해 근무하였다. 1
김승옥 / 金升玉 [역사/근대사]
1889-196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전라북도 고창(高敞) 출신이다. 1919년 3월 19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고창읍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오동균(吳東均)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국민휘보’, ‘조선독립가’ 등 문서를 등사하며 추진하다
김승학 / 金承學 [역사/근대사]
1881-196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07년 정미조약 체결 때 서울 종로에서 반대연설을 하였으며,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평북독판부 국내특파원으로 선발되어 평안도·황해도일대에 연통제를 조직하고 88개소에 달하는 독립단 지단을 설치, 운영하였다.
김시백 / 金時伯 [역사/근대사]
1887-1950. 항일기의 의병장.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의병을 일으켜 영월의병장으로 활약하였고, 1908년 소모장으로서 강원도·경상북도·충청북도 일대에서 의병모집활동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결국 영주에서 붙잡혀 징역 10년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하였다. 건국포장
김시숙 / 金時淑 [역사/근대사]
1880-1933.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여성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 출신이다. 두 번의 결혼에 실패한 후, 숙부 김문주(金汶柱)의 권유로 40세의 늦은 나이에 글을 배워, 개화여성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여수원(
김시용 / 金時容 [역사/근대사]
1906-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제주도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와세다[早稻田] 대학에 입학하였다. 1928년 재학 중 항일학생단체인 재일조선청년동맹(在日朝鮮靑年同盟)에 가입하였다. 1929년 재일조선청년동맹에서 발행한 《조선청년(朝鮮靑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