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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려
용만잡흥 / 龍灣雜興 [문학/한문학]
고려 후기에 김극기(金克己)가 지은 한시. 5언고시 5수.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동문선(東文選)』 등에 수록되어 있다. 「용만잡흥」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용만(龍灣)을 보고 느낀 감정을 시에 담아 읊은 것이다. 「숙향촌(宿香村)」·「전가사시(田家四時)」 등과
용문창 / 龍門倉 [경제·산업/경제]
고려시대 개경에 설치되었던 창고. 개성에는 용문창을 비롯하여 좌창·우창·대의창 이 있었다. 용문창 곡식은 부용창·우창과 같이 주로 전란이나 수한 등 비상시에 대비하였다. 1052년(문종 6)에 용문창의 곡식 8,000석을 염주·백주에 옮기어 농민에게 지급하였고, 10
용안 / 龍安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려시대에 함열현(咸悅縣) 임내의 도내산은소(道內山銀所)였는데, 1321년(충숙왕 8) 이곳 출신인 백안부개(伯顔夫介)가 원나라에서 본국에 유리한 공을 세웠으므로 용안현으로 승격시켰다. 1391년(공양왕 3)에 전주 임내의 풍저현(
용안향교 / 龍安鄕校 [교육/교육]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교동리에 있는 향교. 1391년(공양왕 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416년(태종 16)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그 뒤 중건하였다
용장서원 / 龍章書院 [교육/교육]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에 있는 서원. 고려 때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양능양(梁能讓)의 덕행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일원사(一源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면서 용장서원으로 개칭하였고 1302년(충렬왕 28)에 양주운(梁朱雲)을 추가
용진 / 龍津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문천지역의 옛 지명. 고려시대에 용진(龍津)이라 이름을 바꾸고 진(鎭)을 두었다. 1006년(목종 9)에 성을 쌓았는데 주위가 3,004척, 높이가 5척이고 삼면이 바다에 둘려 있으며 성내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축성 후인 공민왕 때 문주(文州, 지금의 文川)
용호군 / 龍虎軍 [정치·법제/국방]
고려시대 경군인 이군육위 중의 한 군단. 응양군과 더불어 이군이라 한다. 태조의 친위군이 광종 때 더욱 증대, 강화되었다가 성종 때 일단 축소된 듯한데, 현종 때쯤 이군으로 정착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조직은 최고 지휘관인 상장군 1인, 대장군 1인, 장군 2인,
우대후 / 牛大吼 [문학/고전시가]
고려 공민왕 때 불려진 참요(讖謠). 『고려사』 권39 공민왕 10년(1362)조와 『문헌비고』에 그 지어진 경위와 한역가(漢譯歌)가 전한다. 공민왕 10년인 신축년 겨울에 홍건적(紅巾賊) 20여만명이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와 서울을 함락하고 주둔한지 수개월이 되었다.
우창 / 右倉 [경제·산업/경제]
고려시대에 국용의 재화를 관리하던 관청. 문종 때 서울에 좌창과 우창이 있어서 좌창은 관리들의 녹봉을 담당하고 우창은 공상(供上)을 담당하였으며, 관원으로는 국왕 측근의 근시를 별감으로 삼아 일을 보게 하였다. 1308년(충선왕 복위) 재정개혁의 일환으로 우창을 풍저
운곡시사 / 耘谷詩史 [문학/한문학]
고려후기부터 조선전기까지 생존한 문인 원천석의 시 「대민음」·「회삼귀일 會三歸一」 등을 수록한 시집. 5권. 왕조교체기의 역사를 시로 다루었으므로 ‘시사(詩史)’라고 하였고, ‘운곡행록(耘谷行錄)’이라고도 한다. 작자는 고려 말에도 벼슬을 하지 않았고, 조선왕조가 들어